이현모 ()

이현모 글씨
이현모 글씨
조선시대사
인물
조선 후기에, 부교리, 집의, 부수찬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문약(文若)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685년(숙종 11)
사망 연도
1731년(영조 7)
본관
전주
주요 관직
부교리|정언|헌납|수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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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후기에, 부교리, 집의, 부수찬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문약(文若). 헌납(獻納) 이형(李逈)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이영휘(李永輝)이고, 아버지는 대사헌 이제(李濟)이며, 어머니는 정식(鄭拭)의 딸이다. 이조판서 이성중(李成中)의 아버지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진사과를 거쳐 문음으로 관직에 진출했으며, 지방 수령직을 수행하던 1727년(영조 3)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이듬해 부수찬에 제수되었다. 이 때 부교리(副校理) 조명교(曹命敎)와 국왕을 간하는 8조항 차자(箚子: 임금에게 간단한 서식으로 올리는 글)를 올린 신임으로 부교리·정언·헌납·수찬 등의 청요직을 거쳤다.

그러나 1729년(영조 5) 교리로 재직 중에 궐직(闕直)했다는 이유로 외직인 벽동군수(碧潼郡守)로 좌천되었다가 부수찬으로 재임용된 뒤 부응교·부교리·집의·부수찬 등을 두루 역임하였다.

1731년(영조 7)에는 부응교로 재직하면서 직언을 성심으로 받아들일 것에 대한 상소 사건으로 영조의 미움을 받아 교리·부응교·사간 등을 역임하다 재차 지방 수령으로 용강(龍岡)에 보임(補任)되어 근무하던 중 병으로 죽었다.

그의 아버지는 관직이 관서관찰사에 이르렀고, 그 또한 여러 관직을 역임하였으나 죽음에 이르러서는 염(殮)할 만한 옷조차 없을 정도로 가난하였다.

참고문헌

『숙종실록(肅宗實錄)』
『영조실록(英祖實錄)』
『국조방목(國朝榜目)』
관련 미디어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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