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수원(壽元). 아버지는 하원군 이정(河原君 李鋥)이며, 어머니는 남양홍씨로 영의정 홍섬(洪暹)의 딸이다.
1578년(선조 11) 13세 때 익성정(益城正)에 봉해지고 얼마 후 도정(都正)이 되었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 선조가 의주로 파천하자 아버지와 함께 걸어서 의주 행재소(行在所)에 호종(扈從)하였으며, 1596년 정의대부(正義大夫)로 가자(加資)되고 익성군(益城君)에 봉해졌다.
이무렵 그가 왕족의 위세를 빌려 백성의 서적(書籍)을 침탈했다는 대간의 탄핵이 지속되었으나 왕이 두둔하여 돌보아줌으로써 무사하였고, 오히려 왕이 수십권의 서책을 하사하고 승헌대부(承憲大夫)에 가자하였고, 1610년 종1품인 가덕대부(嘉德大夫)가 되었다.
1612년 대북파가 소북파를 제거하기 위하여 김직재(金直哉) 등이, 순화군(順和君)에게 입양한 그의 아들 진릉군 이태경(晉陵君 李泰慶)을 받들어 반역을 꾀하려 했다는, 이른바 김직재의 무옥 사건에 연루되어 거제도에 유배되어 배소에서 죽었다. 1623년 인조반정 이후 신원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