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광주(廣州). 자는 사중(士重), 호는 급고자(汲古子). 이세우(李世佑)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이자(李滋)이고, 아버지는 좌통례(左通禮) 이약빙(李若氷)이며, 어머니는 홍언승(洪彦昇)의 딸이다.
1538년(중종 33) 별시 문과에 급제하여 공조좌랑을 역임하고 사가독서(賜暇讀書)를 한 뒤, 1546년(명종 1) 문과 중시에 급제하였다. 이듬해 대윤파의 여당을 제거하기 위하여 소윤파 이기(李芑)·정순붕(鄭順朋) 등이 전라도 양재역(良才驛)의 벽서사건을 빌미로 정미사화를 일으켰을 때 그의 아버지가 연루되어 사사(賜死)되고, 그도 연좌되어 영월에 유배되었다.
1549년(명종 4) 평소 사이가 좋지 않았던 동생 홍윤(洪胤)이 조정을 비난하는 말을 하자, 동생이 모반을 도모한다고 무고하여 처형당하게 하였다.
이 해 동생의 모반을 고발하였다는 공으로 소환되어 장단부사로 있을 때 백성을 학대한 죄로 파직되었다가 1561년(명종 16) 공조참의로 다시 기용되고, 1569년(선조 2) 동생을 무고한 사실이 분명하여 삭직되었다. 저서로는 『급고유고(汲古遺稿)』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