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전기에, 승문원박사, 병조좌랑, 고창현감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1592년 임진왜란 당시 적장 가토(加藤淸正)의 군대가 함경도 회령에 이르렀을 때 회령부사 국경인(鞠景仁)이 왕자 임해군(臨海君)과 순화군(順和君)을 비롯하여 수십인을 포박하여 왜군에 투항하였는데, 이때 그도 체포되었다.
적장이 강화문서를 작성하여 포로가 된 왕자와 대신에게 강제로 서명(署名)하게 한 뒤 그 문서를 그에게 전달하면서 행재소(行在所: 왕이 멀리 거둥하여 임시로 머무는 처소)인 의주로 가게 하였다.
행재소에 도달하였으나 적의 문서를 가지고 온 것은 나라를 욕되게 한 짓으로 사형에 처하여야 한다는 탄핵을 받아 투옥되었다. 옥중에서 세번이나 소를 올렸는데, 왕자의 급박한 상황을 말하고 잡혀 있는 대신들의 전언을 상세히 아뢰었다.
적의 문서를 전달하는 것이 주목적이 아니라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두 왕자를 구출하는 것임을 말하고, 그 방법을 모색하여줄 것을 간언하였다. 그의 충성심이 받아들여져 사형은 면하고 길주로 유배되었다가 4년 뒤에 풀려났다.
참고문헌
- 『선조실록(宣祖實錄)』
- 『국조방목(國朝榜目)』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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