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홍재

  • 역사
  • 인물
  • 조선 후기
조선 후기에, 성균관대사성, 이조참의, 대사헌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 사심(士深)
  • 일선(一蟬)
인물/전통 인물
  • 본관한산(韓山, 지금의 충청남도 서천)
  • 사망 연도1794년(정조 18)
  • 성별남성
  • 주요 관직성균관대사성|이조참의|대사헌
  • 출생 연도1727년(영조 3)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원유한 (동국대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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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후기에, 성균관대사성, 이조참의, 대사헌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한산(韓山). 자는 사심(士深), 호는 일선(一蟬). 이수번(李秀蕃)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이사미(李思微)이고, 아버지는 군수 이규항(李奎恒)이며, 어머니는 권변(權忭)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754년(영조 30) 생원시에 합격, 1773년 영희전참봉(永禧殿參奉)이 되었다. 이듬해 증광문과에 을과로 급제, 승문원의 관직을 거쳐 1775년 검열·이조정랑을 역임하였다. 1784년(정조 8) 황해도도사, 1788년 홍문관부교리로 임명되었다.

이듬해 황해도관찰사로 부임하였으나, 그 해 흉년으로 많은 유민이 발생하자 황정(荒政: 구황의 정책)을 소홀히 하였다는 죄상으로 파직되어 하동부로 귀양갔다. 곧 석방되어 이조참판·성균관대사성·이조참의 등을 역임하였다.

1791년 대사헌, 이듬해 대사간으로 적극적인 언로정치를 실행하였다. 1793년 동지 겸 사은부사(冬至兼謝恩副使)로 청나라에 다녀왔으며, 이듬해 강화부유수로 부임하였으나 임지에서 죽었다. 성리학에 밝았으며 특히 예론(禮論)에 정통하였고 시에도 능하였다. 저서로는『일선와고(一蟬窩稿)』가 전한다.

참고문헌

  • - 『영조실록(英祖實錄)』

  • - 『정조실록(正祖實錄)』

  • - 『국조방목(國朝榜目)』

  • - 『청선고(淸選考)』

  • - 『일선와고(一蟬窩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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