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후기에, 전주부윤, 도승지, 병조판서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이 해 병조참판이 되었으며, 1621년 함경도관찰사로 나갔다가 예조참판에 이어 1624년(인조 2) 도승지가 되었다. 이 해 이괄(李适)의 난이 일어나자 도원수 장만(張晩)을 도와 큰 공을 세웠고, 이괄의 난이 진압된 후 장만의 병이 위독해지자 그의 후임으로 도원수가 되었다. 같은 해 대사헌, 1624년 우참찬이 되어 지경연사(知經筵事)를 겸임했으며, 이어 호태감접반사(胡太監接伴使)·대사헌·전주부윤·도승지·병조판서를 지냈다.
1632년 인목대비(仁穆大妃)가 죽자 애책문(哀冊文: 죽은 자를 조의하고 애도하는 글)을 짓고 숭정대부에 오른 뒤 예조·병조의 판서를 역임하였다. 1635년 왕이 여러 대신들에게 왜의 정세에 관해 묻자 모두들 왜인들은 침범할 힘이 없다고 대답했으나, 그는 병선과 군사를 정비해 환란에 대비하자고 청하였다.
1636년 이조판서를 거쳐 우의정이 되어 여러 번 사직을 청했으나 허락되지 않았다. 병자호란이 일어나 적들이 서문(西門) 밖까지 이르자 왕의 국서(國書)를 가지고 적진으로 들어가 국서를 전하고 화의 교섭을 벌였으나 항복은 끝까지 반대하였다.
1637년 영중추부사가 되어 사직을 표했으나 허락되지 않고, 이 해 영의정에 올랐다. 법도에 따르고 검소한 생활로 이름이 높았다. 시호는 충정(忠貞)이다.
참고문헌
- 『명종실록(明宗實錄)』
- 『선조실록(宣祖實錄)』
- 『인조실록(仁祖實錄)』
- 『광해군일기(光海君日記)』
- 『국조방목(國朝榜目)』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 『해속명신록(海束名臣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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