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벽진(碧珍). 자는 여무(汝懋), 호는 외재(畏齋). 아버지는 이엄(李儼)이며, 어머니는 밀양박씨(密陽朴氏)로 승의부위(承義副尉) 박광의(朴光義)의 딸이다. 한강(寒岡) 정구(鄭逑)의 문인으로, 학행이 높아 영남지방의 명유로 추앙을 받았다.
광해군 때 이시발(李時發)·김우옹(金宇顒)의 천거로 세자익위사세마에 임명되었으나 사퇴하였다. 1627년(인조 5) 정묘호란이 일어나자 그 해 가을 강화도에 왕을 호종(扈從)하였고, 그 공으로 서울로 돌아와 음성현감을 지냈다.
죽은 뒤 1648년(인조 26) 병조참의에 추증되고, 경상남도 영산의 덕봉서원(德峰書院)에 제향되었다. 저서로는 『외재집(畏齋集)』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