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사람으로 문하시중 김원충(金元沖)의 딸이며, 정종의 제4비 용절덕비(容節德妃)와 자매간이다.
1049년(문종 3) 4월 문종과 혼인하여 처음에는 숭화궁주(崇化宮主)라 하였으며, 공주 1명을 낳았으나 일찍 죽었다.
김원충은 원성왕계 경주김씨 김인위(金因渭)의 아들이라는 설도 있으므로, 이 견해를 따른다면 김인위는 딸 1명을 현종왕비[元順淑妃]로, 또 손녀 2명 가운데 1명을 정종비로, 또 1명을 문종비로 들여보내 양대에 걸쳐 3명의 후비를 배출한 집안이 된다.
원성왕계 경주김씨가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 것은 현종 때부터이다. 목종 연간에 원성왕계를 표방하는 김씨 일족이 뇌물수수사건으로 유배되었다.
이들이 현종 옹립을 꾀하다 죄를 입고 정계에서 축출되었을 것이며, 현종이 이들과 혼인하게 된 것은 자신을 지원하여 준 데 대한 포상이었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시호는 인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