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1년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1889년(고종 26) 답동본당이 설립되자 빌렘(Wilhelm, J.) 신부가 부임하여 이듬해 지금의 성당자리에 부지 3,212평을 마련하였다.
빌렘 신부에 이어 1890년 11월에 부임한 르비엘(Leviel) 신부는 1891년 7월에 임시성당을 건립하였으며, 3대 신부 마라발(Maraval)은 건평 396평의 본격적인 고딕양식의 연와조 성당건물을 1896년에 완공했다. 그리고 이듬해 7월 4일 뮈텔 주교가 축성식을 거행하였다.
그 뒤 5대 신부 드뇌(Deneux, E.)가 1934년 본당의 개축공사에 착수하여 5대 임종국(林鍾國) 신부 때인 1937년 6월말에 성당을 완공하고 봉헌식을 거행했다. 이후 두 차례의 내부공사가 있었지만 비교적 옛 모습 그대로 보존되어 오늘에 이른다.
평면은 라틴십자형 삼랑식(三廊式)이고, 건축양식은 로마네스크양식으로 전주의 전동성당과 흡사한 외관이다. 적벽돌이 주재료이나 화강 석재를 의장적(意匠的)으로 중요한 곳에 사용한 점이 특이하다.
정면 중앙과 양측에 반원 아치로 된 출입구가 나 있고, 그 위에는 반원 아치의 창이 있는데 창 둘레와 출입구는 화강석재로 처리하였다. 중앙종탑과 좌우의 작은 종각 꼭대기에 구성된 8각고상부첨탑(八角鼓狀部尖塔)은 처마 밑 돌림띠의 석재장식과 함께 정면외관을 웅장하고 화려하게 한다.
이 성당은 1961년 6월 서울대목구에서 분리되어 인천대목구가 설정된 이후 인천교구의 주교좌성당이 되었고, 1981년 사적으로 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