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정의
움집터 17기 등이 확인된 서해 도서 지역의 대규모 신석기시대 마을유적.
발굴경위 및 결과
인천 삼목도 선사주거지는 원래 삼목도 내 동쪽 구릉 정상에서 해안으로 이어지는 완만한 비탈면 끝부분에 자리하였다. 그러나 인천국제공항 및 관련시설 조성 과정에서 토취 지역으로 활용됨에 따라 유적 주변은 원래의 형상을 찾아보기 어렵다.
유적 조사는 모두 3차(2003년, 2004년, 2005년)에 걸쳐 진행되었다. 조사 결과 이곳은 최소 17기 이상의 움집이 있었던 대규모 신석기시대 마을이었음이 밝혀졌다. 17기의 움집터 중 현재까지 조사가 완료된 것은 모두 10기(1~9호, 11호)이며, 나머지 7기는 평면상에서 확인된 상태이다.
형태와 특징
유적의 연대는 첫째, 암사동식 구분계 토기와 서해안식 동일계 토기가 동일 움집터에서 함께 출토되고, 둘째, 중기 이후에 등장하는 양단 돌출형 갈돌과 삼각만입형 화살촉 등이 확인되는 점을 고려할 때 서기전 4000년기 후반을 중심으로 하는 신석기시대 중기 단계로 볼 수 있다. 움집터에서 채취된 시료의 방사성탄소연대측정법에서도 서기전 3500~3100년 사이로 측정되어 이를 뒷받침한다.
이 유적을 조사하기 이전의 서해안 신석기시대 유적은 조개더미 또는 화덕자리만 조사되었을 뿐 마을유적은 확인되지 않았다. 섬이라는 특성상 식수 확보 등의 문제로 신석기시대에는 장기 거주보다는 식량 채취를 위해 일시적으로 점유하였던 한정 행위 장소로 인식되어 왔다.
그러나 움집터 17기 이상의 마을유적이 확인됨에 따라 섬에서도 신석기시대 사람들이 장기간 거주했던 사실을 알 수 있게 되었다. 이후 영종도를 비롯한 인근에서 신석기시대 대규모 마을이 확인되었다.
의의 및 평가
참고문헌
단행본
- 『인천 삼목도 III유적 발굴조사 보고서』(서울대학교박물관, 2009)
- 『인천 삼목도 III유적 학술발굴조사 보고서』(서울대학교박물관, 2007)
논문
- 임상택, 양시은, 「인천 삼목도 III 유적」(『한국신석기연구』 11, 한국신석기학회, 2006)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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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 땅에 30~100cm의 깊이로 넓은 구덩이를 파서 만든 집터. 밑면을 방바닥으로 하여 그 위에 지붕을 만든 살림집 형태로, 한반도에서는 신석기 시대 이후 선사 시대 전반에 걸쳐 나타났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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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2
: 선사 시대의 집터에서 난방과 음식 마련을 위하여 불을 피우던 자리. 가장자리의 바닥에 흙 또는 돌을 두르거나 깔았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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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3
: 탄소의 방사성 동위 원소에 의하여 절대 연령이나 연대를 재는 방법. 생물이 죽으면 이산화 탄소의 결합이 끊겨 사체(死體) 속의 탄소 14가 일정한 반감기로 계속 줄어들기 때문에 시료 속의 탄소 14의 양을 근거로 그 생물이 살았던 연대를 추정할 수 있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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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4
: 선사 시대의 집터에서 난방과 음식 마련을 위하여 불을 피우던 자리. 가장자리의 바닥에 흙 또는 돌을 두르거나 깔았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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