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일제강점기 「봄 스케치」·「고궁의 추광」·「중국인상」 등을 그린 화가. 서양화가.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1939년에는 중국으로 가서 1945년 광복으로 귀국할 때까지 북경과 만주 일원에서 「고궁의 추광」, 「중국인상」 등과 같은 역사 유적과 중국 풍정을 그렸다. 중국 시기의 풍경화들은 대작은 물론 소품에서도 구도가 웅장하고 광대하게 그려졌고, 색채 구사도 매우 생동적으로 풍부한 역량을 나타냈다. 임군홍은 만주에 정착하여 한구(漢口)미술광고사를 운영하는 한편 김혜일(金惠一)과 2인전을 개최하였고 1941년에는 일본의 무한(武漢)미술전에 「고낭(枯娘)」을 출품하였다.
광복 후에는 귀국하여 고려광고사를 운영하며 미국 공보원이 주문한 그림 등을 그렸다. 그러면서 순수 작품활동도 병행하여 1946년에는 엄도만, 한홍택(韓弘澤), 신홍휴(申鴻休), 이종무(李種武) 등과 ‘양화6인전’을 가졌다. 1947년에는 이쾌대(李快大) 등이 주도한 조선미술문화협회 창립에 동참, 1949년까지 그 회원 작품전에 참가하며 「설경(雪景)」 등을 출품하였다.
임군홍은 6·25전쟁 중 월북하였고 1953년부터 1961년까지 조선미술가동맹 개성시 지부장을 지냈다. 1962년 이후에는 미술가동맹 현역미술가로 활동하였다. 1970년대에는 유화를 포기하고 조선화 기법을 터득하여 「동기골 전투」(1973), 「공장을 지키는 사람들」(1974) 등을 조선화로 제작하였다. 이밖에도 소설삽화와 신문삽화를 제작하였다.
상훈과 추모
참고문헌
- 『한국근대회화선집 -북으로 간 화가들-』(금성출판사, 1990)
- 『망각의 화가 임군홍』(롯데미술관, 1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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