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덕제

  • 역사
  • 인물
  • 조선 후기
조선 후기에, 좌승지, 대사헌, 예조판서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 사경(士徑), 성일(聖日)
  • 삼호(三好)
  • 시호충헌(忠獻)
인물/전통 인물
  • 본관평택(平澤)
  • 사망 연도1774년(영조 50)
  • 성별남성
  • 주요 관직좌승지|대사헌|예조판서
  • 출생 연도1722년(경종 2)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김호종 (안동대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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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후기에, 좌승지, 대사헌, 예조판서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평택(平澤). 자는 성일(聖日)·사경(士徑), 호는 삼호(三好). 임석주(林錫周)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임봉휘(林鳳輝)이고, 아버지는 승지 임광필(林光弼)이며, 어머니는 이수헌(李秀憲)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761년(영조 37) 통덕(通德)으로 있으면서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 한림(翰林: 예문관 검열)에 보직되어 창덕궁에 있었다. 당시 영조가 세자의 비행에 격노하여 창덕궁에 나와 세자를 죽이려고 하자 그 불가함을 역설하고, 내전에 들어가 11세 된 정조(正祖)를 업고 나와 영조에게 부친의 잘못을 빌게 하였다.

사도세자가 사망한 이후 영조는 세자시강원의 시신(侍臣)들을 모두 몰아내었으나 그가 혼자 동궁 뒤에 엎드려 모시다가, 마침내 별군직(別軍職)으로 몰려나왔는데, 윤숙(尹塾)과 함께 여러 대신들을 향하여 세자를 구하지 못한 것을 책망하였다.

이튿날 당시 영의정 신만(申晩)과 좌의정 홍봉한(洪鳳漢)이 사실을 영조에게 고자질하였으므로 유배되었다. 이듬해 석방되어 함평현감으로 재직중 죽었다.

천성이 정직하고 굳세기로도 유명하였다. 1774년 좌승지에, 1777년(정조 1) 대사헌으로, 1783년 다시 예조판서로 각각 추증되었다. 시호는 충헌(忠獻)이다.

참고문헌

  • - 『영조실록(英祖實錄)』

  • - 『정조실록(正祖實錄)』

  • - 『국조방목(國朝榜目)』

  • - 『은파유고(恩坡遺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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