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 영천 출생. 1930년 경성제국대학 법문학부를 졸업한 뒤 평안북도 내무부에서 근무하다 1933년 11월 일본 고등문관시험 사법과에 합격했다. 1934년 평안북도 운산군수, 1935년 평안북도 선천군수, 1938년 전라북도 내무부 지방과장, 1941년 광주세무감독국 간세부장(間稅部長), 1943년 충청남도 참여관 겸 충청남도 광공부장, 1944년 전라남도 재무부장 등을 지냈다.
1934년부터 1945년까지 약 11년간 군수, 도이사관, 도사무관, 참여관 등 고위관료로 재직하면서 중일전쟁에 협력한 공로를 인정받아 1940년 훈6등(勳六等) 서보장(瑞寶章)을 받았다.
광복 후 1946년 전라남도 내무부장을 지내다가 1949년 대구변호사회 회장으로 선출됐다. 1958년 제4대 민의원 선거에서 민주당 소속으로 대구에 출마해 낙선했으나, 자유당 당선자의 당선무효 판결로 의원자격을 획득했다. 1960년 7월 실시된 제5대 민의원 선거에서 재선했다. 1966년 신한당 정무위원을 지냈다. 1971년 6월 24일 사망했다.
임문석의 일제시대 활동은 「일제강점하 반민족행위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제2조 제19호에 해당하는 친일반민족행위로 규정되어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 보고서』Ⅳ-15: 친일반민족행위자 결정이유서(pp.78~86)에 상세하게 채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