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석헌

  • 역사
  • 인물
  • 조선 후기
조선 후기에, 함경도사, 부령 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 여삼(汝三)
인물/전통 인물
  • 본관나주(羅州)
  • 사망 연도미상
  • 성별남성
  • 주요 관직부령부사
  • 출생 연도1698년(숙종 24)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이재철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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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후기에, 함경도사, 부령 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나주(羅州). 자는 여삼(汝三). 아버지는 임예(林藝)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742년(영조 18) 성균관유생으로 국왕의 응강(応講)에 뛰어나 국왕의 칭찬과 관직 제수를 허락받았고, 형조판서 정우량(鄭羽良)으로부터 문학적 식견이 있다 하여 시강원에 천거받았다.

시강원에서 폭넓은 문장이해로 국왕의 총애를 받아 거듭 승진하였으나 이 때문에 주위의 견제를 받기도 했다. 1742년 성균관의 구일제(九日祭)에 1등으로 합격하여, 전시에 바로 나가 식년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사서·지평을 거쳐 조정 논의가 크게 일어날 때 향리로 돌아가 버려 당국자의 미움을 받아 칠원현감으로 좌천되었고, 이후 도당록(都堂錄: 홍문관의 제학·교리 등을 선발하기 위한 의정부의 제2차 인사기록)에도 거듭 제외되었으나 국왕에 의해 부교리에 특별히 제수되었다.

1747년 경연에 나아가지 않은 죄로 결성현감으로 나갔다가 내직으로 돌아와 수찬·부교리를 지냈다. 1749년에 부수찬으로 경연에서 『성학집요』를 상의할 때 헛된 생각이 마음의 병을 논하는데 절실함을 강조하였다.

이듬해 경연에서는 모든 사물의 번쇄함을 성찰하고자 한다면 더욱 번거롭고 혼란해져 사물에 이롭지 못하니 오직 대체만을 지키고 세세한 수수는 줄일 것을 주장하였다. 이후 함경도사·부령부사로 나갔다.

참고문헌

  • - 『숙종실록(肅宗實錄)』

  • - 『국조방목(國朝榜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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