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정

  • 역사
  • 인물
  • 조선 후기
조선 후기에 대사간 · 이조참의 · 대사성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 성방(聖方)
  • 치재(巵齋)
인물/전통 인물
  • 본관풍천(豊川, 지금의 황해도 송화)
  • 사망 연도1750년(영조 26)
  • 성별남성
  • 주요 관직대사간|이조참의|대사성
  • 출생 연도1694년(숙종 20)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장동익 (경북대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4년 09월 03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조선 후기에 대사간 · 이조참의 · 대사성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풍천(豊川). 자는 성방(聖方), 호는 치재(巵齋). 임양(任量)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임윤원(任胤元)이고, 아버지는 형조참판 임수적(任守迪)이며, 어머니는 유이정(柳以井)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숙종 때에 진사시에 합격하고, 1722년(경종 2) 황감시(黃柑試)에서 일등하여 전시에 직부(直赴)되고, 이듬해에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문한관을 역임하다가 1728년(영조 4) 지평에 올랐다.

다음해 도당록(都堂錄: 홍문관의 제학이나 교리를 선발하기 위한 의정부의 제1차 인사기록)에 올랐고, 그 뒤 수찬 · 부수찬 · 정언 · 교리 · 부교리 등을 번갈아 역임하였다. 1731년 수찬으로 탕평책에 따른 시정의 폐단을 건의하여 왕의 칭찬을 받았다.

1735년 사간이 되었고, 다음해에 응교로서 중시문과에서 병과로 급제하였다. 곧 승지가 되고, 1740년 대사간에 올랐다. 그 뒤 대사간 · 승지 · 이조참의 등을 거듭 역임하다가 1748년 곡산도호부사가 되어 외직에 나갔고 2년 후에 대사성이 되었다.

고금의 시가에 능했으며 글씨도 뛰어났다고 한다. 저서는 『호재집』, 글씨는 해주축성비(海州築城碑), 개성의 계성사비(啓聖祠碑) 등이 남아 있다.

참고문헌

  • - 『경종실록(景宗實錄)』

  • - 『영조실록(英祖實錄)』

  • - 『국조방목(國朝榜目)』

  • - 『좌간집(左澗集)』

  • - 『조선금석총람(朝鮮金石總覽)』

  •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 - 『조선명신전(朝鮮名臣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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