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후기에 대사간 · 이조참의 · 대사성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다음해 도당록(都堂錄: 홍문관의 제학이나 교리를 선발하기 위한 의정부의 제1차 인사기록)에 올랐고, 그 뒤 수찬 · 부수찬 · 정언 · 교리 · 부교리 등을 번갈아 역임하였다. 1731년 수찬으로 탕평책에 따른 시정의 폐단을 건의하여 왕의 칭찬을 받았다.
1735년 사간이 되었고, 다음해에 응교로서 중시문과에서 병과로 급제하였다. 곧 승지가 되고, 1740년 대사간에 올랐다. 그 뒤 대사간 · 승지 · 이조참의 등을 거듭 역임하다가 1748년 곡산도호부사가 되어 외직에 나갔고 2년 후에 대사성이 되었다.
고금의 시가에 능했으며 글씨도 뛰어났다고 한다. 저서는 『호재집』, 글씨는 해주축성비(海州築城碑), 개성의 계성사비(啓聖祠碑) 등이 남아 있다.
참고문헌
- 『경종실록(景宗實錄)』
- 『영조실록(英祖實錄)』
- 『국조방목(國朝榜目)』
- 『좌간집(左澗集)』
- 『조선금석총람(朝鮮金石總覽)』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 『조선명신전(朝鮮名臣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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