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망지(望之). 호는 노잠(魯岑). 경주양좌촌(慶州良佐村)에서 출생. 아버지는 손현(孫鉉). 어머니는 오천정씨(烏川鄭氏)로 승의랑(承議郞) 정호의(鄭好義)의 딸이다. 갈암(葛庵) 이현일(李玄逸)의 문인이다.
효성이 지극하여 친병(親病)에 40일을 자지 않고 시병하였고, 상을 당해서는 예(禮)를 극진히 하였다. 1676년(숙종 2) 진사시에 합격하여 성균관(成均館)에 들어갔다. 이듬 해 소수(疏首)가 되어 도잠서원청액소(道岑書院請額疏)를 올려 허락을 받았고, 1681년 척향소(斥享疏)를 올려 이이(李珥)와 성혼(成渾)의 문묘종사(文廟從祀)를 반대하기도 했다.
입암서원(立巖書院) 근처에 집을 지어 기거하면서 서원에 나가 유생들에게 역학도설(易學圖說)과 성리서(性理書)를 강하였다. 1693년 조호익(曺好益)의 시호(諡號)를 청하는 소를 올렸고, 또 입암서원의 사액을 청하는 소를 올려 사액을 받았다.
1702년 동강서원(東江書院)을 창건하여 자기의 조상인 손중돈(孫仲暾)을 제향했다. 『경절공실기(景節公實紀)』 1책과 『영모록(永募錄)』 1책을 편수하고 보첩(譜牒)을 정비했다. 저서로는 『노잠문집(魯岑文集)』 2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