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중기에, 길주부사, 함경도병마절도사, 남원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이듬해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강원도도사로 기용되었으며, 이 때 춘천에서 왜병 400여 명을 죽이는 전공을 세워 회양부사로 승진되었다. 이어 1594년에 길주부사를 거쳐 함경도병마절도사를 지냈다. 1597년 정유재란이 일어나 적병이 호남에 침입하자 남원부사가 되어 내려갔다.
이 때 명나라 장수 양원(楊元)과 함께 성을 수비하였는데 양원은 도중에 도망하고 홀로 계속 분전하다가 전사하였다. 죽은 뒤 조정에서는 예관(禮官)을 보내 치제(致祭: 제사를 치름.)하고 의정부좌찬성에 추증하고 원종공신(原從功臣) 1등을 추서하였으며, 광해군 때 남원의 충렬사(忠烈祠)에 제향되었다.
1702년(숙종 28)에는 그의 자손 통덕랑 임락(任詻)이 왕에게 시호 추증을 청하여 1706년(숙종 32)에 충간(忠簡)이라는 시호가 추증되었다.
참고문헌
- 『선조실록(宣祖實錄)』
- 『국조방목(國朝榜目)』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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