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홍량

  • 종교·철학
  • 인물
  • 조선 후기
조선 후기에, 명주군수, 명주목사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 사인(士寅)
  • 폐추(敝帚)
인물/전통 인물
  • 본관풍천(豊川)
  • 사망 연도1707년(숙종 33)
  • 성별남성
  • 주요 관직명주목사
  • 출생 연도1634년(인조 12)
  • 출생지미상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권오호 (한학자)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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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후기에, 명주군수, 명주목사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풍천(豊川). 자(字)는 사인(士寅), 호는 폐추(敝帚). 아버지는 부호군(副護軍) 임준(任晙), 어머니는 능주구씨(陵州具氏)로 구강(具剛)의 딸이다. 이황(李滉)을 사숙(私淑: 직접 가르침을 받지 않았으나 스스로 그의 학덕을 본받아 학문을 닦음)하였다.

생애 및 활동사항

1657년(효종 8)에 진사시에 합격하고, 1662년(현종 3)에 증광문과(增廣文科)에 병과(丙科)로 합격하여 기천(基川)·명주(溟州)의 군수를 거쳐 목사(牧使)에 이르렀다. 어려서부터 효심이 강하여 부모의 뜻에 따라 학업에 열중하였고, 관직에 있을 때는 항상 백성의 질고(疾苦)를 생각하여 부역(賦役)을 경감해 주고 빈한(貧寒)을 구휼하였다.

임홍량은 당시 성리학(性理學)이 융성하여 그에 대한 시비가 자주 일어남을 보고 성리학의 연구를 포기하고 오직 시문(詩文)의 연구에 힘을 써서 아순(雅馴: 문장의 품이 높고 점잖은 모양)하다는 평을 받았다. 저서로는 『폐추유고(敝帚遺稿)』 4권이 있다.

참고문헌

  • - 『국조방목(國朝榜目)』

  •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 - 『인조실록(仁祖實錄)』

  • - 『폐추유고(敝帚遺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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