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희재

  • 역사
  • 인물
  • 조선 전기
조선전기 승문원정자를 역임한 문신. 서예가.
이칭
  • 경여(敬輿)
  • 시호문숙(文肅)
  • 물암(勿菴)
인물/전통 인물
  • 관련 사건갑자사화
  • 본관풍천(豊川)
  • 사망 연도1504년(연산군 10)
  • 성별남성
  • 주요 관직승문원정자
  • 출생 연도1472년(성종 3)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권인혁 (제주대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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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전기 승문원정자를 역임한 문신. 서예가.

개설

본관은 풍천(豊川). 자는 경여(敬輿), 호는 물암(勿菴). 임견(任肩)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임원준(任元濬)이고, 아버지는 도승지 임사홍(任士洪)이며, 어머니는 보성군(寶城君) 이합(李㝓)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김종직(金宗直)의 문인으로 1486년(성종 17) 진사시에 합격하고, 1498년 식년 문과에 급제하여 승문원정자가 되고 홍문관에 들어간 뒤 사가독서(賜暇讀書: 문흥을 일으키기 위하여 유능한 젊은 관료들에게 휴가를 주어 독서에만 전념케 하던 제도)하였다.

그러나 연산군 때 사림이 탄핵을 받게 되자 김종직의 제자로서 강백진(康伯珍)·이계맹(李繼孟)·강혼(姜渾) 등과 붕당을 만들어 정치를 비방하고 세상의 일을 비평하였다 하여 곤장 100대를 맞고 귀양갔었다.

일찍이 시 한 절구를 병풍에 썼는데 “요순(堯舜)을 본받으면 저절로 태평한 것인데, 진시황은 무슨 일로 백성을 괴롭혔는가? 재앙이 집안에서 일어날 줄을 모르고, 공연히 오랑캐를 막으려고 만리장성을 쌓았구나.”라고 하였다.

어느 날 연산군이 임사홍의 집에 들렀다가 그가 이 시를 쓴 것을 알게 되어 화를 당하여 함경도 종성으로 유배되었다가 곧 풀려났으나, 1504년 갑자사화 때 죽임을 당하였다.

글씨는 송설체(松雪體)를 잘 썼으며, 경기도 여주의 「임호문공원준신도비(任胡文公元濬神道碑)」와 양주의 「성판서건묘비(成判書健墓碑)」 등이 있다. 시호는 문숙(文肅)이다.

참고문헌

  • - 『성종실록(成宗實錄)』

  • - 『연산군일기(燕山君日記)』

  • - 『국조방목(國朝榜目)』

  • - 『점필재집(佔畢齋集)』

  • - 『재사당일집(再思堂逸集)』

  • - 『허암유고(虛庵遺稿)』

  • - 『이평사집(李評事集)』

  • - 『대동기문(大東奇聞)』

  • - 『해동야언(海東野言)』

  • -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 - 『조선금석총람(朝鮮金石總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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