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양전쟁 발발 후 미국에서 한국에 우호적인 분위기가 형성되자 1942년 국치일을 맞이해 한인의 자주독립 의지를 천명하고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승인을 촉구할 목적으로 로스앤젤레스 시청에서 태극기를 게양했던 행사이다.
1942년 3·1절 기념식에서 로스앤젤레스 부시장 피터슨(Frank Peterson)은 임시정부가 미국의 승인을 얻으면 시청에 한국국기를 달아주겠다고 연설하였다. 이에 고무된 재미한족연합위원회의 집행부위원장 김호는 미국 국기일에 추축국과 싸우는 연합국의 27개국 국기를 게양하는 행사에 한국도 참가해달라고 요청해 허락을 받아냈다. 나아가 로스앤젤레스 시청에 태극기를 게양하는 현기식(懸旗式)을 추진하였는데, 날짜는 가장 치욕스런 국치일에 자주독립 의지를 대내외에 알리겠다는 의도로 8월 29일로 정하였다.
8월 29일 로스앤젤레스 시청에 수많은 한인들과 미국인들이 참석한 가운데 오후 2시 미국 육군군악대와 의장대의 뒤를 따라 한인경위대 등이 태극기를 앞세워 빅토리아하우스에서 시청까지 행진하였고, 시장 바론(Fletcher Bowron)에게 전달된 태극기가 한·미 양국의 국가가 연주된 뒤 오후 3시 정각에 시청 깃대에 내걸렸다. 부시장 피터슨의 개회사에 이어 김호와 전 해군제독 마샬(Albert Marshall) 등이 연설하였으며, 임시정부 등 축사가 대독되었다.
현기식은 미국 전시정보국의 배려로 전 세계에 알려졌고, 김호의 연설문 등은 12개국의 말로 번역되어 단파 라디오로 역시 전 세계에 방송되었다. 이후 재미한족연합회는 미국 각지에 한국국기 게양을 청원하여 50여 개의 주·시 등의 동의를 얻었다. 1944년 11월 미국 체신부가 태극기 기념우표를 발행하는 성과도 거두었다.
나라를 빼앗긴 지 32년만에 외국의 관청에서 처음으로 국기를 게양한 현기식은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연합국의 일원이 되었음을 대외에 널리 알리고, 로스앤젤레스 시가 한국을 독립국가로 인정함으로써 임시정부 승인에 호의적인 분위기를 형성하는 데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아울러 임시정부의 기치 아래 일치단결해서 적극적으로 항일 독립전쟁을 전개하는 전환점이 마련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