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일제강점기 때, 미국에서 하와이 대한인국민회 기관지의 주필, 주미 외교위원부 외교위원장 등으로 활동하며 민족운동을 전개하였고 해방 이후, 한인재단 총무 등을 역임하며 한인사회의 발전에 기여한 언론인·정치인·독립운동가.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1930년 하와이로 이주하여 대한인교민단에 입단하였고, 미포(美布)대표대회(동지미포대표회)의 미주대표로 분열된 한인단체를 부흥시키고 민족운동을 강화하는 데 힘썼으나 동지회와 마찰로 실패하였다. 1931년 하와이 대한인교민단의 기관지 「국민보(國民報)」의 편집인이 되었으며, 교회재산과 교민단 회관을 매각해 동지회의 재정을 충당하려는 이승만에 반대하는 투쟁을 벌였다. 1932년에는 하와이 대한인국민회를 복설시키고 1933년 총무가 되어 한인단체의 통합과 한인사회의 부흥에 앞장섰다. 1932년 김구의 한인애국단을 비밀리에 후원하는 하와이애국단에 가입하고, 1936년 하와이 대한인국민회의 기관지 「국민보」 주필이 되었다.
1941년 호놀룰루(Honolulu)에서 개최된 해외한족대회에 참석하여 독립전선 통일과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봉대 등이 담긴 대회의 선언문과 해외 한족대회 결의안을 작성하였다. 이어 조직된 재미한족연합위원회 의사부의 비서 겸 행정위원이 되었다.
1944년 임시정부의 지시로 동지회 계열의 단체를 제외하고 개최된 13개 한인단체 대표회에서 주미외교위원부의 외교위원장으로 선출되었다. 1945년 연합국회의에 파견될 임시정부의 대표로 선임되었으나 미국의 허락을 받지 못하였다. 그 해 4월 재미한족연합위원회 의사부 위원장을 맡았다.
해방 후 10월 조국의 재건을 후원하기 위해 구성된 재미한족국내파견대표단의 부단장으로 28년여 만에 귀국하였다. 1946년 12월 남조선과도입법의원의 의원으로 선출되어 법제 · 사법분과위원회 부위원장으로 1년 간 활동하면서 조국의 건설에 이바지하였다. 1948년 미국으로 돌아가 1951년 북미대한인국민회 중앙집행위원장, 1957년 한인재단의 총무 겸 재무 등으로 한인사회의 발전에 기여하였으며, 1959년 『재미한인 50년사』를 발간하였다.
상훈과 추모
참고문헌
- 『김호-재미한인 독립운동의 표상』(홍선표, 역사공간, 2012)
- 『대한민국 독립유공자 공훈록 12』(국가보훈처, 1996)
- 『재미한인 50년사』(김원용, 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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