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대한인국민회와 재미한족연합위원회에서 활동한 김호가 미주한인의 독립운동 역사를 후대가 잊지 않고 계승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김원용에 의뢰해 편찬되었다. 저자인 김원용은 1951년부터 8년여 기간 동안 각종 문건과 기록들을 수집, 조사한 뒤 대한인국민회 창립 50주년이 되는 1959년 3월 발행인 김호와 UC버클리대학교에 연구차 도미한 손보기의 보조에 힘입어 리들리에서 『재미한인오십년사』를 발간하였다. 책의 서문은 한국사정사를 설립하며 중립화 통일운동에 매진하던 김용중이 썼다.
김원용은 1917년 5월 8일 차이나호 선편으로 샌프란시스코에 온 후 콜로라도주 프에블로지방의 탄광노동자로 미국생활을 시작하였다. 1914년 7월 미국에 온 김호가 탄광노동을 위해 1917년 프에블로 이거하자, 김호와 김원용은 프에블로의 한인들을 결집시켜 1918년 4월 14일 대한인국민회 프에블로지방회를 설립하였다. 김원용과 김호의 인연은 프에블로 활동 이후부터 평생동안 지속되었다. 김원용은 김호와 마찬가지로 1930년까지 이승만의 열열한 지지자였다. 그는 동지회 시카고대표로 하와이에서 개최한 동지미포대표회(1930.7.15∼21)에 참석한 후 이승만을 도와 동지회 중앙이사부 상무원 겸 재무로 활동하였다. 그러나 하와이 교민단과 이승만·동지회 간의 분쟁 후, 김원용은 1930년 10월 동지회의 모든 직에서 사면하고 이승만과 결별하였다.
김원용은 『국민보』의 주필(1931년, 1936년)로 활동하였고, 1941년 재미한족연합위원회 설립 이후 전경무와 함께 워싱턴사무소를 설립해 외교활동의 전면에 나섰다. 1945년 4월 재미한족연합위원회 의사부 위원장에 선출된 후 하와이를 대표하는 인물이 되었다. 해방 후 그는 안재홍의 후임으로 1947년 2월 남조선과도입법의원 관선의원에 선임되어 김호와 함께 국내에서 활발한 의정활동을 전개하였다.
본 책은 1959년에 필사본으로 출판되었다. 그러다가 미주한인이민 100주년을 기념하여 당시 필사를 담당했던 손보기에 의해 가로쓰기와 현대어로의 교정, 각종 사진과 자료 등이 첨부되어 2004년 10월 혜안에서 재출간 되었다.
이 책은 전체 7장으로 구성되었다. 제1장은 1903년 하와이 이민의 유래를 통해 형성된 하와이와 멕시코, 쿠바의 이민과 한인사회의 상황, 사진혼인, 미주유학생의 정형 등을 담고 있다.
제2장은 재미한인사회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한인교회의 설립과 활동에 대해 담고 있다.
제3장은 친목과 단결을 위해 만든 동회와 최초의 정치활동 단체인 신민회, 그리고 미주한인의 각종 단체 등을 망라하고 있다. 아울러 주요 단체에서 활동한 인물들을 소개하고 있다.
제4장은 미주한인들이 설립한 학교와 국어교육, 장학 및 출판사업, 그리고 예술활동 등을 담고 있다.
제5장은 하와이와 북미지역 한인들의 경제상태를 정리하고 한인들의 경제활동상을 담고 있다.
제6장은 1905년 7월 하와이 한인대표로 선임된 윤병구가 이승만과 함께 러일강화회의를 대비한 외교활동을 시작으로 해방이후 재미한족연합위원회의 한국파견대표단의 국내활동에 이르기까지 정치, 군사, 선전, 외교 등 각 방면에서 전개한 정치적 활동을 담고 있다.
제7장은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성립과 조직, 분열과 통합, 이승만의 탄핵, 의열투쟁과 한국광복군의 설립과 활동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미주한인의 이민과 생활상, 각종 단체의 결성과 정치활동, 교육 및 교회활동 등 이민사의 거의 전 영역을 정리한 최초의 역사서로 의의가 있다. 그러나 반이승만 정서를 갖고 서술해 정치적 편향성을 드러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