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북미대한인유학생총회는 미주 한인 유학생들이 결성한 최대의 학생단체이다. 제1차 세계대전 종결 이후 개최될 파리강화회의를 대비하기 위해 1919년 1월 1일 오하이오주에서 미주대한인학생회가 결성되었다. 이후 미국 각지에서 한인학생들의 독자활동이 전개되자, 1921년 각 지역 학생회를 통합한 북미대한인유학생총회를 결성하였다. 1945년까지 활동하면서 영문·국문잡지를 발간하고, 국내에 의연금을 송금하며, 일제 침략규탄 운동 등을 전개하였다. 북미대한인유학생총회는 학생신분으로 민족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해방 후 근대 국가건설을 위한 인재가 되기 위해 노력하였다.
정의
미주 한인 유학생들이 결성한 최대의 학생단체.
설립목적
연원 및 변천
미주대한인학생회 결성 이후 시카고, 다뉴바, 샌프란시스코 등 미국 각지에서 한인학생들의 독자활동이 전개되었다. 그러자 한인학생들은 1919년 9월 26일 샌프란시스코에서 한인학생공동회를 열고 학생회 통합을 결의하였고, 1920년 11월 11일 북미대한인유학생회포고서를 발표해 통합 학생회의 설립 목적과 활동 방침을 알렸다. 그 후 1921년 4월 30일 미국 내 11개 지역 학생대표들이 뉴욕에서 모인 가운데 북미대한인유학생총회를 결성하였다. 이 때 초대 회장은 이용직, 부회장은 조병옥으로 선출하였다. 이로 볼 때 북미대한인유학생총회는 오하이오주에서 결성한 미주대한인학생회를 바탕으로 시작되었으나 통합 체제를 갖춘 때는 1921년부터였다.
기능과 역할
외부 활동으로는 1932년 버팔로의 국제학생지원대회, 1935년 시카고의 동양학생대회 등 미국에 개최하는 각종 국제학생대회에 한국대표를 파견해 한국사정을 선전하였다.
독립운동 활동과 관련해서는 광주학생운동 직후 투옥되거나 부상당한 학생들의 구호를 위한 의연금 송금, 윤봉길의거 직후 안창호 체포에 대한 석방운동, 중일전쟁 발발시 일제의 침략규탄운동 등을 전개하였다.
미일전쟁 발발 후인 1943년 12월부터 재미한족연합위원회에 참여해 항일운동을 전개하였으나, 워싱턴사무소 개소문제를 둘러싸고 갈등이 일어나면서 재미한족연합위원회에서 탈퇴하였다.
의의와 평가
참고문헌
- 『우라키』;『신한민보』; The Korean Student Bulletin
- 「일제하 미국유학연구」(홍선표, 『국사관논총』96집, 2001)
- 「북미유학생잡지 『우라키』연구」(김희곤, 『김엽박사정년기념사학논총』, 경북사학회,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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