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적인 역할뿐만 아니라 민족운동의 선구자적인 역할을 담당하며 초기 하와이 한인이민사회의 친교와 교육의 중심이 된 교회이다.
하와이 이민자들에게 기독교를 통한 올바른 신앙인을 육성해 미국사회로부터 원만한 유대관계를 도모하고, 한인들의 결속과 단결을 증진시켜 민족 정체성을 강화 · 확립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첫 교회는 한인감리교선교회의 이름으로 시작하여 1916년 제일한인감리교회로 이름을 바꾸었다가, 1965년 1월 3일 그리스도연합감리교회로 변경되었다. 1968년 1월 미국 감리교단과 복음연합형제교단이 통합하여 연합감리교회를 형성하자 그리스도감리교회의 이름이 그리스도연합감리교회로 바뀌었다.
초대 교역자는 한국 서부지방 감리사였던 홍승하였고, 1905년 12월 2대 교역자로 민찬호가 부임하였다. 이후 1911년 3월 홍치범(3대), 1916년 2월 송헌주(4대), 1918년 3월 방화중(5대), 1920년 4월 황사용(6대), 1923년 현순(7대), 1926년 홍한식(8대), 1930년 변홍규(9대), 1933년 임두화(10대), 1945년 7월 정의조(11대)가 차례로 담임 교역자로 활동하였다. 해방 이후인 1952년 1월부터는 이동진, Hallry Pak, Fiske, 박대희, 이응균 목사 등이 교회를 담임했다.
교회는 1904년 11월부터 하와이 감리교선교부와 함께 『포와한인교보』라는 월간 한글 교회소식지를 만들어 하와이 각지의 한인교회에 배포하였다. 이 월간 소식지는 논설, 주일성경공과, 교회소식, 한국소식, 호놀룰루 소식 등을 포함하였고, 하와이 한인들에게 성경 지식은 물론 각종 지식을 전달하는 교육용 매체로 활용되었다.
1929년부터 1945년 1월까지는 한 · 영 이중 언어로 계속 발간되었다. 현재 가장 오래된 『포와한인교보』는 1907년 9월호인데, 사장 겸 주필 와드맨 감리사, 부주필 민찬호에 의해 발간된 것으로 나타난다.
초대 교역자로 부임한 홍승하는 동족단결, 민지계발, 국정쇄신을 목적으로 설립한 신민회에서 회장으로 활동하며 국권회복을 위한 노력과 하와이 한인들의 권익보호를 위해 앞장섰다.
러일전쟁을 종식시키기 위해 미국 대통령 루즈벨트가 포츠머스에서 강화회의를 주재하려고 할 때, 하와이의 한인들은 한인교회를 중심으로 대한제국의 주권을 보호하기 위한 외교활동을 추진하였다. 즉 당시 감리교 감리사인 워드만과 의논하여 미국정부와의 교섭을 시도하였고, 한인대표로 윤병구를 선임하였다.
윤병구는 이승만과 함께 새거모어 힐에 있는 루즈벨트 대통령을 찾아 한국인의 입장을 전달하는 외교활동을 전개하였다. 그러나 대한제국 주미외교공관의 비협조로 결국 뜻을 이루지 못했다. 이러한 노력이 가능했던 것은 하와이 한인들이 교회를 중심으로 잘 단합되고 연결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종교시설로만 국한되지 않고 하와이 이민 초기부터 한인들의 애국심을 고취하고 한인들 간의 단결을 도모한 민족 구심체로의 역할을 담당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