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일전쟁의 발발을 계기로 일본군의 심리 교란, 한국인의 반일활동 조성, 그리고 미국의 정책과 입장을 선전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미국의 소리는 제2차 세계대전이 진행 중이던 1942년 2월 BBC 네트워크를 통해 독일어방송을 개시하면서 처음으로 시작되었다. 단파 라디오를 통해 적의 심리를 교란하고 미국의 정책과 입장을 선전하기 위해 만들어진 미국의 소리는 뉴욕, 워싱턴, 샌프란시스코 3곳에 분산 조직되었다.
미국의 소리 한국어방송은 미일전쟁 발발 직후인 1942년 6월 13일 워싱턴DC에서 주미외교위원부 위원장 이승만에 의해 단파라디오로 송출되었다. 미국의 소리 한국어방송이 체계를 갖고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된 때는 1942년 8월 29일 샌프란시스코에서 “자유의 종은 울린다”라는 한국어방송 프로그램을 방송하면서다. 이는 국치일을 기념하여 재미한족연합위원회가 LA시청 건물에서 개최한 태극기 현기식 행사때 행한 연설을 미국의 소리 샌프란시스코지부가 받아 전 세계로 송출한 것이었다.
미국의 소리 한국어방송에서 활약한 사람은 서울 경신학교 교장 쿤스, 연희전문학교 교수 밀러, 대구계성학교 교장 헨드슨 아담스 등 한국에서 활동했던 미국인들과 이진묵·김하태·민덕순·김지혜·김창수 등 재미한인들이다.
해방 될 때까지 한국어방송은 일본의 후방을 교란하고 독립운동을 전개하도록 한반도를 비롯한 아시아 각지의 한국인들을 고무시켰다. 국내에서는 일제의 감시망을 피해 미국의 소리 한국어방송을 청취하였고 이 일로 경성방송국(JODK)의 한국인 직원들이 일제에 의해 체포되는 ‘단파사건’이 일어나기도 하였다. 한국어방송은 제2차 대전 종결 직후 1945년 12월 전시정보국(OWI)가 폐지되자 존폐의 논란이 일다가 미국 국무부의 국제방송처(IBD)로 이전, 운영되었다.
일제강점시기 해외 및 국내 한인들에게 일제 패망과 독립의 희망을 불어 일으킨 방송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