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김형제상회는 1921년경 미국 중가주 리들리시에 김호와 김형순에 의해 설립된 회사이다. 김형순은 1903년 최초의 미국 이민자가 하와이로 갔을 때 통역관 겸 인솔자가 되었으며, 1916년부터 리들리에 정착, 묘목회사를 설립하고 과수원도 경영하였다. 김형제상회는 김형순이 김호와 동업으로 설립한 회사로 털없는 복숭아 신품종인 넥타린 개발하고 묘목과 과일을 판매해 성공을 거두었다. 김형제상회는 한인사회를 발전시키고 대한인국민회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독립운동을 지원하였다. 이들은 독자적 경제기반을 갖는 부업형 독립운동가로서 조직을 중시하는 총무형 지도자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정의
1921년경 미국 중가주 리들리(Reedley)시에 김호와 김형순에 의해 설립된 회사.
개설
설립목적
연원 및 변천
김호는 배재학당 등에서 교편을 잡다가 상하이를 거쳐 1914년 미국에 건너가 대한인국민회의 회원으로 활동하였다. 3·1운동 당시 대한인국민회 중앙총회의 특파위원으로서 독립의연금을 모금하는 과정에서 재정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1920년부터 리들리로 가서 김형순과 함께 농장을 경영하면서 1921년경 김형제상회를 설립하였다. 지분은 김형순 50%, 그의 부인 한덕세 25%, 김호 25%였다.
김형순은 미국인 원예전문가 앤더슨(Anderson)에게 의뢰하여 자두와 복숭아를 접목해서 털없는 복숭아인 넥타린(nectarine, 별명 Son of Peach)을 개발하였다. 김형제상회는 넥타린을 재배하여 르 그랜드(Le Grand)와 선 그랜드(Sun Grand) 상표로 미국 전역에 공급하였다. 또 넥타린 묘목을 독점으로 재배하고 수확한 과일을 포장해 전국 각지의 도매상에 공급하여 대성공을 거둠으로써 미주 한인 최초로 백만장자가 되었다.
기능과 역할
현황
의의와 평가
참고문헌
- 『김호-재미한인 독립운동의 표상』(홍선표, 역사공간, 2012)
- 『국외항일유적지:미주지역』(한철호,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2009)
- 『재미한인 50년사』(김원용, 1959)
- 「김호의 항일독립운동과 정치활동」(정병준, 『한국민족운동사연구』43, 2005)
- 「한인사회 선구자:김호를 중심으로」(김지수, 『미주 한인이민 100년사』, 한미동포재단, 미주 한인이민 100주년 기념사업회,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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