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1883∼1884년간 우리나라 최초로 미국과 유럽국가에 파견된 외교사절단.
개설
역사적 배경
경과
1883년 7월 보빙사절단은 제물포를 출발하여 일본을 거쳐 9월 2일 샌프란시스코에 상륙하였다. 그들은 미국대통령 아더(Chester A. Arthur)에게 조선의 개국 연호가 적힌 국서를 봉정하고, 공식행사에 국기를 게양하는 등 자주외교를 펼쳤다. 또한 개화정책에 필요한 외교고문 · 군사교관 등의 파견을 요청하였으며, 근대식 시설과 문물을 시찰하였다. 10월 12일 보빙사절단은 유길준을 유학생으로 남겨둔 채 홍영식 등은 곧바로 귀국하였고, 민영익 등은 유럽을 거쳐 1884년 5월 31일 돌아왔다.
결과
의의와 평가
참고문헌
- 『친미개화파연구』(한철호, 국학자료원, 1998)
- 『상투틀고 미국에 가다』(홍사중, 홍성사, 1983)
- 『韓美五十年史』(文一平, 李光麟 교주, 탐구당, 1975)
- 「韓美外交史硏究―閔泳翊의 對美自主外交와 世界一周航行―」(김원모, 『龍巖車文燮敎授華甲紀念 史學論叢』, 신서원, 1989)
- 「1883年의 韓國使節團의 보스튼 訪問과 韓美 科學技術交流의 發端」(卞鍾和, 『한국과학사학회지』4-1, 1982)
주석
-
주1
: 루셔스 하우드 푸트, 미국의 외교관(1826~?). 초대 미국 공사로 부임하여, 민영목(閔泳穆)과 조미 수호 통상 조약을 비준ㆍ교환하였으며, 갑신정변 때에는 변란의 조정에 힘썼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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