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당집(澤堂集)』 별집 권14 잡저에 실려 있다.
「작문모범」에는 고문(古文)을 창작할 때의 모범과 고문 학습 방법이 제시되어 있다.
고금은 사정이 판이하며, 글이란 풍속이나 사정을 통하게 하는 것이기 때문에 당대에 맞는 문장을 쓰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였다. 그리고 글을 쓰는 데는 당송고문(唐宋古文)을 법도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당송(唐宋)을 법도로 삼기 위해서는 선진(先秦)이나 양한(兩漢)의 글이라 할지라도 『시경(詩經)』 · 『서경(書經)』과 사서(四書)는 의리의 근원이므로 필수서이다. 『순자(筍子)』와 『양자(楊子)』, 그리고 『주역』 「계사(繫辭)」 · 『좌전(左傳)』 · 『예기(禮記)』 등은 한유(韓愈)가 존숭한 것이다. 사마천(司馬遷)과 반고(班固)의 글은 기사체(記事體)가 시작된 것이기 때문에 선별해서 읽을 것을 강조하였다.
또한 명(明)나라의 문장에 있어서 두 갈래가 있음을 지적하였다. 하나는 방손지(方遜志) · 왕양명(王陽明) 등으로 이들은 당송시대(唐宋時代)의 대표적 고문가(古文家)인 한유(韓愈)와 구양수(歐陽脩)의 부류라 할 수 있고, 다른 하나는 이몽양(李夢陽) 이하 사대가(四大家)나 십대가(十大家)이다. 이몽양을 비롯한 사대가와 십대가는 『좌전』 · 『국어(國語)』, 사마천 · 반고 등의 진한 이상의 문학에만 전적으로 힘써서 세속과 멀어진 문제가 있으므로, 이들의 글을 배우지 말라고 강조하였다.
이 밖에도 송대(宋代)에 의리를 밝힌 글로서 『태극도설(太極圖說)』과 『서명(西銘)』, 『고문진보(古文眞寶)』에 수록된 사마광(司馬光)의 글, 주희(朱熹)와 여조겸(呂祖謙)의 글도 읽어야 한다고 하였다. 또 서유(徐庾) 등이 지은 빼어난 사륙변려문(四六騈儷文)도 읽어 그 미려한 멋을 원용하라고 덧붙이기도 하였다.
그리고 『자치통감강목(資治通鑑綱目)』은 정사(正史)이긴 하지만, 글을 지으려면 사무(事務)를 두루 알아야 하는 동시에 옛 역사를 상고하여 인용하는 것이 필수적이니 반드시 읽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식의 「작문모범」은 『택당집』 별집에 수록된 「학시준적(學詩準的)」과 함께 그의 문학관을 전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자료이다. 「작문모범」이 고문에 대한 전범과 학습 요령을 제시하였다면 「학시준적」은 한시에 대한 전범과 학습 요령을 제시하였다. 이 글을 남긴 이유는 원래 후손들의 올바른 문학 창작과 연습을 도모하기 위함이지만, 그 안에는 이식 자신의 문학관을 고찰할 수 있는 내용들이 구체적으로 담겨 있다.
「작문모범」은 이식이 고문의 전범과 고문 학습 방법을 구체적으로 설명한 글이다. 그는 이를 통해 자신의 문학관을 후손들에게 전수하고자 하였다. 이식은 당시 진한 고문(秦漢古文)을 추숭했던 의고문가(擬古文家)들이 제창한 “문은 반드시 진한을 배우고 시는 반드시 성당을 배운다.[文必秦漢 詩必盛唐]”/인용표기방법/라는 주장을 배격하고 이것을 극복하려는 방법을 제시하였다. 이것을 통하여 이식의 문학관은 한유의 문학관과 맥락이 닿아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세월이 흐르고 풍속이 변천하므로 자신이 사는 시대적 문제를 진실하게 다루는 금문(今文)이 바로 고문(古文)임을 제시하였다. 이식의 「작문모범」이 그의 고문관(古文觀)을 담은 글이라면, 『택당집』 별집에 수록된 「학시준적」은 자신의 시학(詩學)을 제시한 글이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