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당집(澤堂集)』은 조선 후기 문신 이식(李植)의 시문집이다. 총 34권 17책의 목판본이 다수 소장되어 있다. 이 책은 초간본, 중간본, 추각본 등 수차례에 걸쳐 간행되었으며, 서울대학교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국립중앙도서관 등에 소장되어 있다.
34권 17책의 목판본이다. 초간본, 중간본, 추각본 등 수차례에 걸쳐 간행되었으며, 서울대학교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국립중앙도서관, 성균관대학교 도서관, 연세대학교 도서관, 간송 미술관 등에 소장되어 있다.
『택당집』은 원집은 10권과 속집 6권 및 별집 18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송시열의 서(序)와 간략한 총목(總目), 그리고 이기진의 발문이 있다.
원집은 권1은 시 173수, 권2는 시 173수, 권3은 시 139수, 권4는 시 155수, 권5는 시 135수, 권6은 시 175수, 권7은 표 8편, 교서 7편, 자문(咨文) · 정문(呈文) · 게첩(揭帖) 22편, 권8은 소(疏) 9편, 차(箚), 권9는 서(序) 23편, 인(引) 2편, 발 11편, 기 5편, 권10은 묘지 11편, 비명 2편, 묘갈 4편, 묘표 2편 등이 수록되어 있다.
속집은 모두 각체(各體)의 시로 되어 있다. 권1은 158수, 권2는 144수, 권3은 136수, 권4는 128수, 권5는 177수, 권6은 178수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별집은 권1은 주문(奏文) 1편, 자문 2편, 게첩 6편, 책문 2편, 교서 13편, 불윤비답(不允批答) 1편, 전(箋) 10편, 계(啓), 격(檄), 국서(國書) 2편, 권2·3은 소 21편, 권4는 차 5편, 계사(啓辭) 5편, 권5는 서(序) 9편, 인, 발 10편, 기 6편, 권6은 묘지 11편, 권7은 비명 5편, 묘갈 5편, 묘표 3편, 권8∼10은 행장 15편, 권11은 지(志) 16편, 권12는 전 2편, 기사, 설 3편, 장 5편, 명 2편, 부, 사, 제문 11편, 상량문 6편, 모연문(募緣文), 권13은 경연일기(經筵日記), 책문(策問) 10편, 전책문(殿策問) 10편, 권14∼17은 잡저, 권18은 서 46편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식은 생전에 많은 기간 동안 벼슬을 하였다. 그와 관련된 각종 응제문(應製文)이 많다. 그중에 「진도독전자문(陳都督前咨文)」은 1637년(인조 15)에 쓴 것으로, 병자호란과 정묘호란 때에 패한 사정을 담아 명나라 도독에게 보낸 것이다. 소차(疏箚)에도 전쟁과 관련하여 호란이 끝나 화의를 맺은 뒤에도 와신상담하여 반드시 치욕을 씻어내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계사 중에는 그가 인조의 노여움을 사서 좌천되기까지 한 사친추숭(私親追崇)을 반대한 글이 있다.
송시열이 지은 『택당집』의 서에서, 이식의 문장은 매우 질박하고 침착하다는 평을 얻고 있다. 그와 문명(文名)을 같이 떨친 장유(張維)의 문집에 쓴 서문에서는 최고의 찬사를 아낌없이 구사하였다. 이식이 지은 다른 사람 문집의 서 · 발에서는 그의 문학관을 살펴볼 수 있다. 대체로 전통적인 재도적 문학관(載道的文學觀)이 강하게 드러나고 있다. 「이암집후서(頤庵集後敍)」에서 문장은 반드시 인의도덕의 실(實)을 나타내는 것을 근본으로 삼아야 한다는 주장을 펴고 있어 그의 문학관을 잘 말해 주고 있다.
잡저에는 대부분 학술에 관한 잡록이나 문학에 얽힌 이야기가 소개되어 있다. 「산록(散錄)」에는 유가 경전을 비롯하여 제가의 학술상의 의론과 고사(故事)가 소개되어 있다. 특히 허균(許筠)이 「수호전」을 모방하여 「홍길동전」을 썼다고 하는 기록을 남겨 「홍길동전」의 작자를 밝혀 놓았다. 잡저에서 소설에 대한 견해를 아울러 밝히고 있다. 그는 소설이 인성에 끼치는 해독이 심하다고 주장하면서 소설에 관계되는 서적은 모두 불살라야 한다고 하였다. 잡저에 들어 있는 제식(祭式)과 제의(祭儀)는 저자가 주자(朱子)의 『가례』와 고유 풍속을 참작하여 정한 것으로 자손들의 실용을 위하여 작성한 것이다. 「유계(遺戒)」는 사후 장례에 관한 10조항의 간략한 계명이다. 「유계수사(遺戒數事)」는 집안의 제사에 관한 당부를 적고 있다.
『택당집』의 끝부분에 실린 「택구거사자서(澤癯居士自敍)」 및 「자지속(自誌續)」은 일종의 자전적 행장이다. 평생 겪은 일을 기록하였다. 「서후잡록(敍後雜錄)」 역시 자서전의 일부로 자신의 생애에 대한 기록을 많이 남기고 있다. 이 기록은 인조의 등극과 함께 요직에 발탁되어 중요한 임무를 두루 거치고 병자호란을 겪은 대신이 기록하여 놓은 자전이라는 점에서 사료의 가치가 충분하다고 하겠다.
이식은 당대를 대표하는 문인이었으며 또한 후대에 이른바 한문 사대가(漢文四大家)로 호칭될 만큼의 훌륭한 작가였다. 그의 시문학이 수록된 『택당집』은 그의 문학 세계를 종합적이고 입체적으로 살필 수 있는 귀중한 자료라고 할 수 있다. 게다가 『택당집』에 수록된 잡저를 통해 그의 다양한 분야의 관심과 생각을 간취할 수 있고, 자전적인 행장이나 기록을 통해 당대의 역사적 상황을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