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집 60권과 부록 3권으로 구성된 63권 22책의 초간본 활자본 및 중간본 목판본이 있다. 초간본은 국립중앙도서관, 고려대학교, 연세대학교, 영남대학교 등에 소장되어 있고, 중간본은 서울대학교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고려대학교 등에 소장되어 있다.
생전에 신흠 자신의 자편고(自編稿)를 ‘상촌고(象村稿)’라 이름하고 자서(自序)를 지었다. 이를 바탕으로 작자가 죽은 지 1년 후인 1629년(인조 7)에 그의 아들 신익성(申翊聖)이 활자본으로 원집 60권과 부록 3권의 총 63권 20책으로 간행하였다. 이것이 초간본이다. 중간본은 1636년(인조 14)에 역시 신익성이 주도하여, 태인현감(泰仁縣監)으로 재직 중인 종제(從弟) 신익량(申翊亮)과 함께 다시 산정하여 태인(泰仁)에서 63권의 18책 목판으로 간행하였다.
신익성은 활자본으로는 널리 배포하지 못하는 것을 문제로 여겨 중간하게 되었는데, 중간의 또 다른 이유는 초간본 가운데 저자의 글이 아닌 것과 내용상의 오류가 많다는 지적이 나온 데 따른 것이었다. 이때 문집의 이름을 ‘상촌집(象村集)’으로 바꾸었다.
1981년에는 종손 집안에 소장된 20책본을 대본으로 하고 장서각에 있는 18책본과 대교하여 경문사(景文社)에서 영인하였다. 이 영인본에는 구두점과 고유 명사 중심의 색인이 들어 있고, 윤남한(尹南漢)의 해제가 있다.
『상촌집』의 구성을 보면 다음과 같다.
권1은 사(辭) · 부(賦), 권2는 풍(風), 권3∼4는 악부(樂府), 권5∼21은 시, 권22는 서(序), 권23은 기, 권24∼28은 묘지명 · 묘표 · 묘갈명 · 신도비명, 권29는 행장, 권30은 애사 · 제문, 권31은 잡저, 권32는 소차(疏箚), 권33은 계(啓), 권34는 설(說), 권35∼36은 서독(書牘), 권37은 제발(題跋), 권38은 응제록(應製錄)이다. 여기까지가 본집에 해당된다.
권39∼40은 잡저로 내집이고, 권41∼46은 「휘언(彙言)」, 권47∼48은 「야언(野言)」으로 외집이다. 그리고 권49는 「산중독언」(山中獨言), 권50은 「강상록(江上錄)」, 권51∼54는 「구정록(求正錄)」, 권55는 「선천규관(先天窺管)」, 권56은 지(志), 권57은 임진왜란 때 중국에서 파견된 인물에 관한 기록이다. 권58∼60은 「청창연담」(晴窓軟談)으로 독립적인 저술에 해당된다. 권61∼63은 부록이다.
『상촌집』의 구성은 한마디로 다양하고 폭넓은 것이 그 특색이다. 여기에는 문학이 있고 도학이 있으며 고금(古今)의 유학이 평정(評定)되어 있는가 하면, 문필가의 풍류가 있고 조선과 명나라의 사상이 같이 교류되고 있으며, 도덕과 공업이 있다. 또한 이상의 내용을 담은 역사가 있다.
『상촌집』의 각 부문별 내용은 다음과 같다. 시 부문에 있어서는 여러 형태의 시 및 사(詞)가 골고루 있다. 특히 고시(古詩)와 악부에 힘을 기울여 이를 그의 시작 세계의 중심으로 삼고 있다. 이러한 사실은 고문 부흥기의 기수로서 그의 단편적인 모습을 보여 준다. 산문 부문에 있어서는 서문류(序文類) 25수 가운데서 시고서(詩稿序)가 8수이고, 문집서(文集序)가 2수이다. 이것으로 보면 시 세계로 향한 그의 관심의 비중이 더 높음을 알 수 있다.
『상촌집』의 송인서(送人序) 9수 가운데에서 조경송인서(朝京送人序)가 4수이다. 이것은 그의 문집서에 강왈광(姜曰廣)을 비롯한 명나라 사람의 서문이 많은 것과 더불어, 그의 문장과 교우(交友)가 지닌 국제성을 뜻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기(記) 가운데서는 「낙민루기(樂民樓記)」 · 「근민헌기(近民軒記)」가 특이하다. 『상촌집』의 잡저에는 그의 학문의 요처인 「심학편(心學篇)」에서 시작하여 재용(財用) · 용병(用兵) 등의 경세(經世)에 이르는 사상이 나타나 있다. 「휘언」에는 역대의 치란(治亂)을 논한 사론(史論), 인물론, 국사관(國史觀)과 그의 정치적인 식견을 담은 정론(政論) 등이 주된 내용을 이루고 있다. 여기서 정치가로서의 신흠의 단편적인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상촌집』의 「야언」과 「산중독언」은 유배 중에 떠오른 그의 느낌이나 생각과 언론을 담은 글이며, 「강상록」은 노량(鷺梁)에서 적배(謫配)의 명을 기다리며 쓴 것이다. 그의 유배 경위와 정경이 상세히 기록된 일종의 신변잡기이면서 당시의 당쟁을 알 수 있게 하는 야사로서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
『상촌집』에서 사료적(史料的)인 가치를 본격적으로 지니고 있는 글은 56권에 있는 지(志)이다. 내용은 대부분 그가 종군했거나 체험한 임진왜란의 사료들이다. 「임진왜구구흔시말지(壬辰倭寇構釁始末志)」 · 「본국피무시말지(本國被誣始末志)」 · 「본국피병지(本國被兵志)」 · 「제장사난초함패지(諸將士亂初陷敗志)」 · 「천조선후출병내원지(天朝先後出兵來援志)」 등이 그것들이다. 『상촌집』 57권의 「천조조사장신선후거래성명기(天朝詔使將臣先後去來姓名記)」 또한 귀중한 사료이다. 설번(薛藩) 등 조사(詔使)와 송경략(宋經略) · 이제독(李提督) 이하의 각 아문별로 군관 · 장신들의 출신 · 과환(科宦) · 내원(來援) 등에 관한 기록이다. 이것을 통하여 임진왜란 때에 파견된 명군(明軍)의 구성이나 성격을 분석할 수 있다.
『상촌집』의 「선천규관」과 「구정록」은 경학 내지는 도학사상을 담은 일종의 철학서이고, 끝에 있는 「청창연담」은 주로 그의 문장론, 문학관 및 우리나라와 중국의 시문(詩文)과 작가에 대한 논평을 실은 일종의 평론서이다.
『상촌집』의 부록 3권에는 장유(張維)가 찬(撰)한 시장(諡狀), 김상헌(金尙憲)이 찬한 행장(行狀), 이정귀(李廷龜)가 찬한 신도비명, 이수광(李睟光)이 찬한 묘지명병서(墓誌銘幷序) 및 이정귀 이하 선조 ∼ 인조 간의 명류(名流)가 거의 망라된 제문 · 만사가 실려 있다.
『상촌집』은 폭넓고 다양한 내용을 담고 있어 여러 가지 면에서 중시된다.
첫째, 신흠은 장유 · 이정귀 · 이식(李植)과 더불어 한문사대가(漢文四大家)의 한 사람으로 꼽히는 고문 부흥의 기수이다. 그의 시문의 정수(精髓)가 이 책에 담겨져 있다. 둘째, 그가 도학 전성기였던 선조 대에 생장하고 수학하면서 체득했던 광범위한 성리학적 체계와 다양했던 사상적 내용이 함께 담겨져 있다. 셋째, 그가 살았던 시기는 왜란 및 호란, 당쟁이 빚은 기축옥사, 광해군의 난정(亂政), 인조반정, 이괄(李适)의 난 등의 내우로 점철된 때인 선조 ∼ 인조 연간이다. 따라서 그간의 활동 경륜과 사론이 문학 · 학술 · 사상 · 도덕 및 공업과 함께 담겨져 있다. 특히 왜란 때의 정치 · 외교 · 군사 및 사상에 관한 중요한 사료의 가치를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넷째, 신흠의 문인이면서 호란 때의 난국을 수습했던 최명길(崔鳴吉)은 신흠의 문장 · 도덕 · 공업은 세상에서 받들어 칭송하는 바라고 발문(跋文)에서 갈파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