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평산(平山). 자는 군보(君輔), 호는 상봉(象峯). 우참찬 신영(申瑛)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신승서(申承緖)이고, 아버지는 형조참판 신감(申鑑)이며, 어머니는 승지 조인후(趙仁後)의 딸이다. 부인은 단천군수 박효성(朴孝誠)과 성균관직강(成均館直講) 이진빈(李軫賓)의 딸이다.
1634년(인조 12)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637년 특명으로 경상감사가 되었으나 최명길(崔鳴吉)의 옹호에도 불구하고 여론 때문에 교체되었다. 1638년 청주목사로 읍인(邑人)의 여자를 취첩하였다는 이유로 탄핵을 받아 파직되었다.
1639년부터 동부승지·우부승지·밀양부사를 거쳐, 1640년 승지에 이르렀으나 1644년 명나라가 망한 뒤 벼슬을 버리고 숨어 지냈다.
경상감사 시절, 계축옥사에 조금도 동요되지 않은 황신(黃愼)의 강인한 마음을 감탄하면서 작은아버지인 신흠(申欽)보다 훌륭하다고 하였다. 1808년(순조 8) 예조에서 유생들의 상언(上言)에 의하여 충효의 행위로 정려(旌閭)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