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장흥(長興). 자는 이척(而惕), 호는 창랑(滄浪). 아버지는 진사 고계영(高季英)이며, 어머니는 양응기(梁應箕)의 딸이다. 김장생(金長生)의 문인이다.
1591년(선조 24) 사마시에 합격하였다. 광해군 즉위 후 집권한 대북세력이 서인학통을 공격하자 최영경(崔永慶)을 죽이고, 임진왜란 당시 선조를 호종하지 않았다는 죄목으로 곤경에 빠져 있던 고(故) 정철(鄭澈)과 성혼(成渾)을 두둔하는 상소를 주도하였다.
그러나 이 상소에서 선현으로 이름 높은 이언적(李彦迪)을 제외하였다는 이유로 대북세력에 의하여 상소는 불태워지고, 사림의 구호에도 불구하고 종신금고에 처하여졌다.
1676년 광주(光州)에 건립된 운암사(雲巖祠)에 제향되었으며, 지평에 추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