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경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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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에, 임진왜란 당시 선조를 호종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곤경에 빠진 정철과 성혼을 두둔하는 상소에서 이언적을 제외하였다는 이유로 종신금고형에 처해진 유생.
이칭
  • 이척(而惕)
  • 창랑(滄浪)
인물/전통 인물
  • 본관장흥(長興)
  • 사망 연도1609년(광해군 1)
  • 성별남성
  • 출생 연도1559년(명종 14)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주웅영 (경북대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5년 05월 29일
창랑실적 미디어 정보

창랑실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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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중기에, 임진왜란 당시 선조를 호종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곤경에 빠진 정철과 성혼을 두둔하는 상소에서 이언적을 제외하였다는 이유로 종신금고형에 처해진 유생.

개설

본관은 장흥(長興). 자는 이척(而惕), 호는 창랑(滄浪). 아버지는 진사 고계영(高季英)이며, 어머니는 양응기(梁應箕)의 딸이다. 김장생(金長生)의 문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591년(선조 24) 사마시에 합격하였다. 광해군 즉위 후 집권한 대북세력이 서인학통을 공격하자 최영경(崔永慶)을 죽이고, 임진왜란 당시 선조를 호종하지 않았다는 죄목으로 곤경에 빠져 있던 고(故) 정철(鄭澈)과 성혼(成渾)을 두둔하는 상소를 주도하였다.

그러나 이 상소에서 선현으로 이름 높은 이언적(李彦迪)을 제외하였다는 이유로 대북세력에 의하여 상소는 불태워지고, 사림의 구호에도 불구하고 종신금고에 처하여졌다.

상훈과 추모

1676년 광주(光州)에 건립된 운암사(雲巖祠)에 제향되었으며, 지평에 추증되었다.

참고문헌

  • - 『광해군일기(光海君日記)』

  • - 『대동야승(大東野乘)』

  • - 『매산집(梅山集)』

  • - 『청선고(淸選考)』

주석

  • 주1

    : 생원 급제 : 『신묘년사마방목(辛卯年司馬榜目)』(성균관대학교 존경각[貴B13KB-0052]).

  • 주2

    : 고경리 상소 : 광해군일기[중초본]3권, 1608년(광해 즉위년) 4월 24일. "성혼의 무죄를 밝히려는 전라도 유생 고경리 등의 상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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