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흠 ()

조선시대사
인물
조선 후기에, 대사성, 이조참의, 승지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자형(子馨)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644년(인조 22)
사망 연도
1695년(숙종 21)
본관
안동(安東)
주요 관직
승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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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후기에, 대사성, 이조참의, 승지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자형(子馨). 할아버지는 권경(權儆)이고, 아버지는 대군사부(大君師傅) 권적(權蹟)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676년(숙종 2) 성균관 유생으로서, 영평정(寧平正) 이사(李泗)가 올린 소로 우의정 허목(許穆)이 사직하자 사직을 만류하도록 소를 올렸다.

1675년(숙종 1) 감시(監試)에서 생원시에 일등하였는데, 이는 10년 전에 향시에 합격하였으나 남중유(南重維)의 사소(邪疏)에 관련되어 유벌(儒罰)을 입었기 때문에 그동안 응시하지 못하다가 이때 칙령으로 응시할 수 있었다. 1678년 증광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그 뒤 대사성 이무(李袤) 등이 6품에 천거하였고, 따로 초계(抄啓)가 있었으므로 참봉으로 6품직에 직승(直陞)되어 정언이 되었다. 도당(都堂)이 선발하는 홍문록(弘文錄)에 뽑혀 부교리·이조좌랑이 되었으며, 식년시에 응시하지 않고 증광시에 응시한 것은 비법(非法)이라고 하여 탄핵을 받기도 하였다. 대사간·대사성·이조참의를 거쳐 승지가 되었다.

참고문헌

『숙종실록(肅宗實錄)』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국조방목(國朝榜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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