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만리

  • 역사
  • 인물
  • 조선 후기
조선 후기에, 사서, 지평, 장령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 일원(一元)
인물/전통 인물
  • 본관능주(綾州)
  • 사망 연도1721년(경종 1)
  • 성별남성
  • 주요 관직장령
  • 출생 연도1656년(효종 7)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주웅영 (경북대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5년 06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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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후기에, 사서, 지평, 장령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능주(綾州). 자는 일원(一元). 구시백(具詩白)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구익창(具益昌)이고, 아버지는 구문주(具文周)이며, 어머니는 이명하(李鳴夏)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699년(숙종 25)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정언(正言) · 사서(司書) · 지평(持平)을 역임하였다. 1716년 장령(掌令)으로 있을 때 이돈(李墩)에 대한 죄과를 공정하게 조사하지 않고 처벌하는 것은 부당하므로 재조사할 것을 상소하였으나 새로운 사실이 드러나지 않자 재조사를 상소하였던 죄로 진해현감(鎭海縣監)으로 강등되었다.

1717년 야인(野人)으로서 정권장악을 위해 서로 경쟁하던 남인과 소론에 대한 숙종의 정책이 잘못되었음을 비판하는 소를 연명(聯名)으로 올렸다. 죽은 뒤인 1768년(영조 44)에는 대신(臺臣)으로서의 행동이 높이 평가되어 손자인 구수국(具壽國)이 공조참의에 특별제수되었다.

참고문헌

  • - 『숙종실록(肅宗實錄)』

  • - 『경종실록(景宗實錄)』

  • - 『영조실록(英祖實錄)』

  • - 『국조방목(國朝榜目)』

주석

  • 주1

    : 가계 : 『국조문과방목』 卷之十三(규장각한국학연구원[奎106])

  • 주2

    : 문과 급제 : 『국조문과방목』 卷之十三(규장각한국학연구원[奎106])

  • 주3

    : 구만리 상소 : 숙종실록57권, 1716년(숙종 42) 6월 6일. "장령 구만리가 이빈흥을 사문하는 일을 그만두라는 명을 거둘 것을 청하다"

  • 주4

    : 구수국 공조참의 임명 : 영조실록110권, 1768년(영조 44) 1월 16일. "구만리의 자손인 구수국을 공조 참의로 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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