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익

  • 역사
  • 인물
  • 조선 후기
조선 후기에, 판서, 지돈령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 익지(翼之)
인물/전통 인물
  • 본관능성(綾城, 지금의 전라남도 화순)
  • 사망 연도1804년(순조 4)
  • 성별남성
  • 주요 관직판서|지돈녕부사
  • 출생 연도1737년(영조 13)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주웅영 (경북대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5년 06월 16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조선 후기에, 판서, 지돈령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능성(綾城). 자는 익지(翼之). 구혁(具爀)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한성부판윤(漢城府判尹) 구택규(具宅奎)이고, 아버지는 판중추부사 구윤옥(具允鈺)이며, 어머니는 김우갑(金禹甲)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761년(영조 37) 정시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1765년 경현당(景賢堂)에서 실시한 한학문신친시(漢學文臣親試)에서 강독을 잘하여 정언이 되었다가 홍문관수찬에 특별히 제수되었다. 헌납 · 사간 · 승지 · 이조참판 · 대사헌을 역임하는 가운데 오랫동안 승지를 지냈다.

1776년(정조 즉위년)에 멀리 유배된 것으로 보아 영조 때에 승지로서 영조의 개혁정치 또는 사도세자(思悼世子)의 죽음을 둘러싸고 투쟁하던 시파(時派)와 벽파(僻派) 중 벽파에 관련된 것 같다.

1784년에 다시 대사헌이 되고, 이어 찬집당상(纂輯堂上) · 함경감사 · 강원감사 · 도총부도총관 · 한성판윤 및 병조 · 형조 · 공조의 판서, 판의금부사를 거쳐 1804년 지돈녕부사로 죽었다.

참고문헌

  • - 『영조실록(英祖實錄)』

  • - 『정조실록(正祖實錄)』

  • - 『순조실록(純祖實錄)』

  • - 『국조방목(國朝榜目)』

주석

  • 주1

    : 본관 및 가계 : 『국조문과방목』 卷之十五(규장각한국학연구원[奎106])

  • 주2

    : 문과 급제 : 『국조문과방목』 卷之十五(규장각한국학연구원[奎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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