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익 ()

조선시대사
인물
조선 후기에, 판서, 지돈령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익지(翼之)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737년(영조 13)
사망 연도
1804년(순조 4)
본관
능성(綾城, 지금의 전라남도 화순)
주요 관직
판서|지돈녕부사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조선 후기에, 판서, 지돈령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능성(綾城). 자는 익지(翼之). 구혁(具爀)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한성부판윤(漢城府判尹) 구택규(具宅奎)이고, 아버지는 판중추부사 구윤옥(具允鈺)이며, 어머니는 김우갑(金禹甲)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761년(영조 37) 정시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1765년 경현당(景賢堂)에서 실시한 한학문신친시(漢學文臣親試)에서 강독을 잘하여 정언이 되었다가 홍문관수찬에 특별히 제수되었다. 헌납·사간·승지·이조참판·대사헌을 역임하는 가운데 오랫동안 승지를 지냈다.

1776년(정조 즉위년)에 멀리 유배된 것으로 보아 영조 때에 승지로서 영조의 개혁정치 또는 사도세자(思悼世子)의 죽음을 둘러싸고 투쟁하던 시파(時派)와 벽파(僻派) 중 벽파에 관련된 것 같다.

1784년에 다시 대사헌이 되고, 이어 찬집당상(纂輯堂上)·함경감사·강원감사·도총부도총관·한성판윤 및 병조·형조·공조의 판서, 판의금부사를 거쳐 1804년 지돈녕부사로 죽었다.

참고문헌

『영조실록(英祖實錄)』
『정조실록(正祖實錄)』
『순조실록(純祖實錄)』
『국조방목(國朝榜目)』
• 항목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