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경우

  • 역사
  • 인물
  • 조선 전기
  • 조선 후기
조선 중기에, 정언, 헌납, 장령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 신지(申之)
인물/전통 인물
  • 본관안동(安東)
  • 사망 연도1616년(광해군 8)
  • 성별남성
  • 주요 관직장령
  • 출생 연도1547년(명종 2)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주웅영 (경북대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5년 06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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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중기에, 정언, 헌납, 장령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신지(申之). 권구(權懼)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권필(權弼)이고, 아버지는 권기(權驥)이며, 어머니는 문명원(文命元)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585년(선조 18) 별시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정언 · 헌납 · 장령을 역임하였고, 임진왜란 때 남원에서 적세를 잘못 상계(上啓)하여 물러나서 의론(議論)을 기다렸다. 장령으로 복직된 뒤에는 영의정 윤두수(尹斗壽)가 성격이 흉활(兇猾: 흉포하고 교활함)하여 화심(禍心: 화를 일으키려는 마음)을 품고, 이권(利權)을 좋아하여 사림에 죄를 얻고 청의(淸議)에 버림받은 지 오래되었으며, 유성룡(柳成龍)이 화의를 주장하여 나라를 그릇되게 한 죄를 범하였다고 탄핵하였다.

그리고 매관납속(賣官納粟: 관직을 재물로 사거나 많은 곡식을 바쳐 얻음)의 병폐를 시정하도록 소를 올리기도 하였다. 장령으로서 시강원(侍講院)에 입직하였으나 병이 심하여 오래 있지 못하였다. 1616년에 통정대부(通政大夫)로서 동지사(冬至使)가 되어 배를 타고 명나라로 가던 도중에 노환으로 죽었다.

참고문헌

  • - 『선조실록(宣祖實錄)』

  • - 『광해군일기(光海君日記)』

  • - 『국조방목(國朝榜目)』

주석

  • 주1

    : 문과 급제 : 『국조문과방목』 卷之八(규장각한국학연구원[奎106])

  • 주2

    : 명나라행 도중 사망 : 『광해군일기[정초본]』 111권, 1617년(광해 9) 1월 4일. "김신국이 변방의 수령과 변장 등의 불법자행을 장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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