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정의
조선 후기, 홍세태(洪世泰)가 지은 백두산(白頭山) 기행문.
구성 및 형식
내용
내용은 다음과 같다. "우리가 부르는 백두산을 청나라에서는 '장백산(長白山)'이라 한다. 그런데 이 산으로부터 흘러 내려온 두 강을 가지고 국경을 삼아 왔지만 그 지역이 험하고 멀어서 제대로 경계를 알기 어려웠다. 1712년(숙종 38) 청나라의 목극등(穆克登)이 백두산에 표석(表石)을 세우기 위하여 파견된다는 통지를 받고, 우리 조정에서는 박권(朴權)으로 정계사(定界使)를 삼아 청나라 관원들과 함께 가서 경계를 결정하도록 하였다. 그래서 백두산 꼭대기에 올라 분수령을 찾아 사람 인자(人字)처럼 생긴 지형 가운데에 정계비(定界碑)를 세우고 내려왔다는 것이다. 그리고 일행이 왕복한 거리는 약 2,000여 리로서 3개월의 시간이 소요되었다는 것이다."
「백두산기」의 글 끝에 저자는 자신이 들은 이야기를 서술하면서, 자신이 사마천(司馬遷)과 같은 필력을 발휘하지 못함을 아쉬워하였다. 역관 김경문을 장하게 여기면서도 또 한편으로 오랑캐 사신을 따라 직방(職方)의 역할만 수행한 것을 한탄스럽게 여기기도 하였다.
특징
의의 및 평가
참고문헌
원전
- 『숙종실록(肅宗實錄)』
- 『유하집(柳下集)』
논문
- 유봉영, 「백두산정계비(白頭山定界碑)와 간도문제(間島問題)」(『백산학보』 13, 백산학회, 1972)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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