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문

  • 역사
  • 인물
  • 조선 후기
조선 후기 조선과 청나라 간의 외교적 사안을 담당한 역관.
이칭
  • 소암(蘇巖)
  • 수겸(守謙)
인물/전통 인물
  • 본관우봉(牛峰)
  • 사망 연도미상
  • 성별남성
  • 주요 관직지중추부사
  • 주요 저서통문관지(通門館志)
  • 출생 연도미상
집필 및 수정
  • 집필 2021년
  • 김우진 (단국대 강사)
  • 최종수정 2025년 07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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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요약

김경문은 조선 후기 조선과 청나라 간의 외교적 사안을 담당한 역관이다. 그는 백두산정계비 설립, 국경 분쟁 사건, 무기 수입 등 조선과 청(淸) 사이의 국제적 분쟁을 해결하는 데 많은 활약을 하였으며, 이러한 외교적 경험을 바탕으로 『통문관지(通門館志)』를 편찬하였다.

키워드

정의

조선 후기 조선과 청나라 간의 외교적 사안을 담당한 역관.

가계 및 인적 사항

본관은 우봉(牛峰). 자는 수겸(守謙), 호는 소암(蘇巖). 아버지는 김지남(金指南)이다.

주요 활동

1690년(숙종 16)에 18세에 역과에 한학(漢學)으로 장원 급제한 후 영조대까지 역관으로 크게 활약하였다. 1711년(숙종 37) 위원(渭原) 백성이 청나라로 월경(越境)하는 사건이 발생하자 재자관(賫咨官)으로 차출되어 양국의 외교 문제를 조율하였고, 임무 수행 중에 청의 군제(軍制)와 정치 상황 등을 자세히 적어서 보고하였다.

특히 1712년(숙종 38) 강희제(康熙帝)가 목극등(穆克登)을 파견하여 국경선을 확정하려 하자, 특별히 부친 김지남과 함께 접반사(接伴使)로 임명되었다. 그는 목극등 일행이 백두산정계비를 세울 때 통역과 응대를 담당하였으며, 조정으로 돌아와서는 백두산 국경지대의 지도를 바쳐서 공로를 치하받았다.

뇌물을 많이 받아 탄핵되기도 하였으나, 1720년(경종 즉위년)에 무기 재료인 궁각(弓角)의 무역, 1722년(경종 2)에 연행사(燕行使)를 보좌하는 상인인 난두(欄頭)의 폐해 일소, 1724년(영조 즉위년) 조공품의 감축, 1725년(영조 1)에 국경 문제의 추론, 1727년(영조 3년)에 조선 상인이 청 호상(豪商)에게 진 채무 문제 해결 등 여러 외교 문제를 해결한 공로로 통정대부(通政大夫), 가의대부(嘉義大夫)를 거쳐 자헌대부(資憲大夫)에 승진하고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를 받게 되었다.

학문과 저술

1708년(숙종 34) 아버지를 비롯하여 역관들과 함께 수년간 쌓은 외교적 경험을 바탕으로 『통문관지(通門館志)』를 편찬하였다. 이는 사대(事大)와 교린(交隣)에 대한 연혁‧역사‧제도‧인물 등을 체계화한 것으로, 당시 외교에 종사하던 실무진의 편람(便覽) 및 백과사전적 구실을 하는 필수서가 되었다. 이외에 『불감록(不堪錄)』 6권과 『소암집(蘇岩集)』 일부를 남겼다고 하나, 전하지 않는다.

참고문헌

  • 원전

  • - 『통문관지(通門館志)』

  • - 『역과방목(譯科榜目)』(국립중앙도서관[일산古6024-98])

  • 논문

  • - 백옥경, 「朝鮮 後期 牛峰金氏 가문의 門中形成과 宗稧 : 繼仝公派를 中心으로」(『역사민속학』 46, 2014)

  • - 김양수, 「조선후기 牛峰金氏의 성립과 발전」(『역사와 실학』 33, 2007)

  • - 이영춘, 「『通文館志』의 편찬과 조선후기 韓中關係의 성격」(『역사와 실학』 33, 2007)

주석

  • 주1

    : 역과 입격 : 『역과방목(譯科榜目)』(국립중앙도서관[일산古6024-98])

  • 주2

    : 평안북도 위원군에 있는 면. 압록강 중류의 굴곡 지대에 있으며 목재의 집산지이다. 군청 소재지이다. 우리말샘

  • 주3

    : 조선 시대에, 중국 조정에 자문(咨文)을 가지고 가던 사신. 우리말샘

  • 주4

    : 중국 청나라의 제4대 황제(1654~1722). 이름은 현엽(玄燁). 묘호는 성조(聖祖). 문무를 장려하였으며, 운하를 정비하고 조세를 덜어 주거나 면제하여 제국의 기초를 확립하였다. 삼번의 난을 평정하여 대만, 몽골, 티베트를 복속하고 러시아의 남하를 막기 위하여 네르친스크 조약을 체결하였다. 재위 기간은 1662~1722년이다. 우리말샘

  • 주5

    : 외국 사신을 접대하던 임시직 벼슬아치. 정삼품 이상에서 임명하였다. 우리말샘

  • 주6

    : 조선 후기에 청나라로 보낸 조선 사신을 이르는 말. 청의 수도인 연경(燕京)에 간 사신으로, 인조 15년(1637)부터 고종 31년(1894)까지 모두 507회 파견되었다. 우리말샘

  • 주7

    : 예전에, 중국의 베이징에 사신으로 가는 일행의 물자를 도맡아 대던 상인. 우리말샘

  • 주8

    : 한꺼번에 싹 제거함. 우리말샘

  • 주9

    : 큰 규모로 장사하는 상인. 또는 돈이 많은 상인. 우리말샘

  • 주10

    : 조선 시대에 둔, 정삼품 문관의 품계. 고종 2년(1865)부터 종친과 의빈(儀賓)의 품계로도 썼다. 우리말샘

  • 주11

    : 조선 시대에 둔, 종이품 문관의 품계. 중종 17년(1522)에 가정대부를 고친 것으로, 고종 2년(1865)부터는 문무관, 종친(宗親), 의빈(儀賓)의 품계로 같이 썼다. 우리말샘

  • 주12

    : 조선 시대에 둔, 정이품 문무관의 품계. 초기에는 문무관에게만 썼으나 고종 2년(1865)부터 종친, 의빈의 품계로도 썼다. 우리말샘

  • 주13

    : 조선 시대에, 중추부에 속한 정이품 무관(武官) 벼슬.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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