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책. 목판본. 1650년(효종 1)에 간행되었다. 홍만종(洪萬宗)의 ≪시화총림 詩話叢林≫에 필사로 수록되어 있다. ≪패림 稗林≫ 제7집에도 실려 있다. 보련각(寶蓮閣)에서 발행한 ≪상촌집 象村集≫ 권58∼60에도 들어 있다.
≪상촌집≫을 중심으로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상촌집≫에 실린 것은 상·중·하 3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상권에 35조(條), 중권에 36조, 하권에 66조 등 모두 137조가 수록되어 있다. 상권과 중권은 대부분이 중국의 시인과 작품에 대한 소개와 비평이다. 하권에서는 우리 나라 작가들의 작품을 뽑아 그에 대하여 시평을 가하고 있다.
특히 문학 일반에 대한 논급에서 문학은 소기(小技)이므로 도학에 당할 수는 없다. 그러나 지극한 도가 있어도 문(文)이 아니면 전해질 수 없다는 ‘관도지기(貫道之器)’로서의 문학의 중요성을 말하였다.
그러면서도 전할 수 있는 것은 말이고 기록할 수 있는 것은 글이지만 정신과 심술(心術)은 전하거나 기록할 수 없다고 보고 도학적인 진실과 문학적인 표현이 일치될 수 있기에는 상당한 어려움이 있음을 인정하였다.
또한 시와 문을 각각 형이상(形而上)과 형이하(形而下), 하늘과 땅에 귀속시키면서 시는 ‘사(詞)’를 위주로 하고, 문은 ‘이(理)’를 주로 삼기 때문에 자칫 시나 문이 각기 주로 삼는 사와 이에 치우치기 쉽다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권장할 만한 시문이 되기 위해서는 사와 이가 적절히 조화되어 창작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 모범적인 예로 ≪시경 詩經≫을 들고 있다.
신흠은 당시(唐詩)와 송시(宋詩)에 대한 문제를 좀더 객관적 시각에서 논하고 있다. 그는 당의 문학은 당의 문학으로서 특징이 있고, 송의 문학도 동일하게 나름의 장점이 있다고 보았다. 작자 당시에 문인들이 당시나 송시에 대하여 편파적인 선호의식을 가지고 다른 시풍을 비난하여온 상황에 반해서 그는 시대성을 중시하는 방향에서 중국시를 인식한 것이다.
≪청창연담≫의 상·중권에 걸쳐 실려 있는 중국관계 시평은 주로 당시와 송시를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다. 역시 당의 경우는 이백(李白)·두보(杜甫), 송의 경우는 소식(蘇軾)이 가장 많이 거론되고 있다. 이것은 아마도 당·송의 시문학이 우리 나라 시문학에 끼친 영향의 막대함을 염두에 두면서 한시문학의 정점(頂點)으로 당·송의 시를 파악한 입장에서였던 것 같다.
≪청창연담≫의 하권에 소개된 우리 나라 역대 한시에 대한 언급에서도 성당시(盛唐詩)의 도입과 발전양상을 중심으로 기술하는 형식을 탈피하지 못하고 있다. 이른바 선조대의 삼당시인(三唐詩人)으로 불리는 최경창(崔慶昌)·백광훈(白光勳)·이달(李達) 등을 높이 평가하고 있음에서 그러한 일면을 확인할 수 있다.
≪청창연담≫에는 조선 중기 시문학을 선두에서 이끌었던 호(湖)·소(蘇)·지(芝), 즉 정사룡(鄭士龍)·노수신(盧守愼)·황정욱(黃廷彧)에 대한 시평이 있다. 도학자들의 시로 서경덕(徐敬德)·조식(曺植)·성혼(成渾)·송익필(宋翼弼) 등의 작품도 소개하고 있다. 규장각도서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