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정의
조선 중기에 삼당시인 중 한 사람으로 『고죽유고』를 저술한 시인.
가계 및 인적 사항
생애 및 활동사항
1561년(명종 16) 23세 때부터 성균관 생원[上庠]이 되어 성균관에서 공부했다. 1568년(선조 1)에 증광문과에 을과(乙科)로 급제하여 북평사(北評事)가 됐다. 예조(禮曹) · 병조(兵曹)의 원외랑(員外郎)을 거쳐 1575년(선조 8)에 사간원정언에 올랐다. 1576년(선조 9) 영광군수(靈光郡守)로 좌천(左遷)되자 충격을 받고 사직(辭職)하였다.
다음 해에 대동도찰방(大同道察訪)으로 복직(復職)했다. 1582년(선조 16)에 선조가 종성부사(鍾城府使)로 특별히 제수(除授)했다. 그러나 북평사의 무고(無辜)한 참소가 있었고 대간(臺諫)에서 갑작스러운 승진을 문제 삼아서 선조는 성균관직강으로 고치도록 명했다. 최경창은 상경(上京) 도중에 종성 객관(客館)에서 죽었다. 저서로 『고죽유고』가 있다.
최경창은 학문과 문장에 능하여 이이(李珥) · 송익필(宋翼弼) · 최립(崔岦) 등과 무이동(武夷洞)에서 서로 시를 주고받았다. 또한 정철(鄭澈), 서익(徐益) 등과 삼청동(三淸洞)에서 교류했다.
작품 경향과 특징
특히 그의 시는 그의 인성에서 나와 시 속에 쓸쓸한 작가의 심사나 가을과 같은 심경이 시 내면과 통합되어 ‘청한(淸寒)’이 시의 주된 정조(情操)를 이루고 있다. 그의 시는 청절하고 담백하다는 평을 받았는데, 백광훈과 이달의 시와 비교할 때 ‘한경(悍勁, 기세가 빠르고 꿋꿋하다)’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최경창은 문장에도 뛰어나 이이 · 송익필 등과 함께 8문장으로 일컬어졌으며, 서화(書畫)에도 뛰어났다.
상훈과 추모
참고문헌
원전
- 『선조실록(宣祖實錄)』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논문
- 안병학, 「최경창의 시세계와 삶의 안정성에 대한 회의」(『태동고전연구』 2, 한림대학교 태동고전연구소, 1986)
- 최명환, 「고죽최경창론」(『동악어문논집』 17, 동악어문학회, 1983)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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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 조선 시대에, 과거 합격자를 성적에 따라 나누던 세 등급 가운데 둘째 등급. 정원은 일곱 명으로, 정팔품의 품계를 받았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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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2
: 조선 시대에, 함경도에 있는 북병영에 속한 정육품 무관 벼슬. 함경도 병마절도사의 보좌관이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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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3
: 고려 시대에, 육조(六曹) 가운데 의례(儀禮), 제향(祭享), 조회(朝會), 교빙(交聘), 학교(學校), 과거(科擧) 따위에 대한 일을 맡아보던 관아. 공양왕 원년(1389)에 예의사를 고친 것이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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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4
: 고려 시대에, 육조(六曹) 가운데 무선(武選), 군무(軍務), 의위(儀衛) 따위에 관한 일을 맡아보던 관아. 이전의 군부사를 고친 것으로, 그 뒤 여러 차례 이름을 고쳤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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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5
: 조선 시대에, 대관과 간관을 아울러 이르던 말.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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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6
: 나그네를 치거나 묵게 하는 집.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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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7
: 조선 중기의 시인 최경창의 시집. 손자 최진해(崔振海)가 수집하고 증손 최석영(崔碩英)이 간행하였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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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8
: 조선 중종과 선조 대에 걸쳐 시명(詩名)을 떨친 세 사람의 시인. 백광훈, 최경창, 이달을 이른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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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9
: 전례(典例)와 고사(故事)를 아울러 이르는 말.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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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0
: 벼슬 따위에 추천하여 관리로 뽑음.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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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1
: 받들어 배향함.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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