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경창

  • 문학
  • 인물
  • 조선 전기
조선 중기에 삼당시인 중 한 사람으로 『고죽유고』를 저술한 시인.
이칭
  • 가운(嘉運)
  • 고죽(孤竹)
인물/전통 인물
  • 성별남성
  • 출생 연도1539년
  • 사망 연도1583년
  • 본관해주(海州)
  • 출생지전라도 영암
  • 주요 저서고죽유고
집필 및 수정
  • 집필 2022년
  • 김지현 (광운대학교 강사, 한문학)
  • 최종수정 2026년 07월 15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내용 요약

최경창은 조선 전기 삼당시인 중 한 사람으로 『고죽유고』를 저술한 시인이다. 본관은 해주, 자는 가운, 호는 고죽, 전라도 영암 출생이다. 당시에 뛰어나 백광훈·이달과 함께 삼당시인으로 불렸다. 송시풍에서 당시풍으로의 전환을 통해 우리 한문학사의 분기점을 이룩한 중심인물이다.

정의

조선 중기에 삼당시인 중 한 사람으로 『고죽유고』를 저술한 시인.

가계 및 인적 사항

최경창(崔慶昌, 1539~1583)의 본관은 해주(海州), 자는 가운(嘉運), 호는 고죽(孤竹)이다. 전라도 영암 출생으로, 최충(崔冲)의 후손이며 최만리(崔萬理)의 5대손이다. 아버지는 최수인(崔守仁)이다. 박순(朴淳)의 문인(門人)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최경창은 백광훈 · 이후백(李後白)과 함께 양응정(梁應鼎)의 문하(門下)에서 공부했다. 1555년(명종 10) 17세 때에 을묘왜란(乙卯倭亂) 당시 왜구를 만났는데, 최경창이 퉁소를 구슬피 불어 왜구들을 향수에 젖게 하여 물리쳤다는 일화(逸話)가 전할 정도로 퉁소를 잘 불었다고 한다.

1561년(명종 16) 23세 때부터 성균관 생원[上庠]이 되어 성균관에서 공부했다. 1568년(선조 1)에 증광문과에 을과(乙科)로 급제하여 북평사(北評事)가 됐다. 예조(禮曹) · 병조(兵曹)원외랑(員外郎)을 거쳐 1575년(선조 8)에 사간원정언에 올랐다. 1576년(선조 9) 영광군수(靈光郡守)로 좌천(左遷)되자 충격을 받고 사직(辭職)하였다.

다음 해에 대동도찰방(大同道察訪)으로 복직(復職)했다. 1582년(선조 16)에 선조가 종성부사(鍾城府使)로 특별히 제수(除授)했다. 그러나 북평사의 무고(無辜)한 참소가 있었고 대간(臺諫)에서 갑작스러운 승진을 문제 삼아서 선조는 성균관직강으로 고치도록 명했다. 최경창은 상경(上京) 도중에 종성 객관(客館)에서 죽었다. 저서로 『고죽유고』가 있다.

최경창은 학문과 문장에 능하여 이이(李珥) · 송익필(宋翼弼) · 최립(崔岦) 등과 무이동(武夷洞)에서 서로 시를 주고받았다. 또한 정철(鄭澈), 서익(徐益) 등과 삼청동(三淸洞)에서 교류했다.

작품 경향과 특징

최경창은 당시(唐詩)에 뛰어나, 백광훈 · 이달과 함께 삼당시인(三唐詩人)으로 불렸다. 송시풍(宋詩風)에서 당시풍(唐詩風)으로의 전환을 통해 우리 한문학사의 분기점을 이룩하는 데에 중심이 되었다. 호남 지역의 문화적 분위기 속에서 당시를 수용하여, 시 창작에 있어서 까다로운 수사(修辭)와 난해한 전고(典故)의 사용을 배제하고 자신의 삶에서 우러나온 솔직한 정서를 이해하기 쉬운 언어로 표현하였다.

특히 그의 시는 그의 인성에서 나와 시 속에 쓸쓸한 작가의 심사나 가을과 같은 심경이 시 내면과 통합되어 ‘청한(淸寒)’이 시의 주된 정조(情操)를 이루고 있다. 그의 시는 청절하고 담백하다는 평을 받았는데, 백광훈과 이달의 시와 비교할 때 ‘한경(悍勁, 기세가 빠르고 꿋꿋하다)’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최경창은 문장에도 뛰어나 이이 · 송익필 등과 함께 8문장으로 일컬어졌으며, 서화(書畫)에도 뛰어났다.

상훈과 추모

숙종 때에 청백리(淸白吏)에 녹선(錄選)되고, 강진(康津) 서봉서원(瑞峯書院)에 봉향(奉享) 되었다.

참고문헌

  • 원전

  • - 『선조실록(宣祖實錄)』

  •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 논문

  • - 안병학, 「최경창의 시세계와 삶의 안정성에 대한 회의」(『태동고전연구』 2, 한림대학교 태동고전연구소, 1986)

  • - 최명환, 「고죽최경창론」(『동악어문논집』 17, 동악어문학회, 1983)

주석

  • 주1

    : 조선 시대에, 과거 합격자를 성적에 따라 나누던 세 등급 가운데 둘째 등급. 정원은 일곱 명으로, 정팔품의 품계를 받았다. 우리말샘

  • 주2

    : 조선 시대에, 함경도에 있는 북병영에 속한 정육품 무관 벼슬. 함경도 병마절도사의 보좌관이다. 우리말샘

  • 주3

    : 고려 시대에, 육조(六曹) 가운데 의례(儀禮), 제향(祭享), 조회(朝會), 교빙(交聘), 학교(學校), 과거(科擧) 따위에 대한 일을 맡아보던 관아. 공양왕 원년(1389)에 예의사를 고친 것이다. 우리말샘

  • 주4

    : 고려 시대에, 육조(六曹) 가운데 무선(武選), 군무(軍務), 의위(儀衛) 따위에 관한 일을 맡아보던 관아. 이전의 군부사를 고친 것으로, 그 뒤 여러 차례 이름을 고쳤다. 우리말샘

  • 주5

    : 조선 시대에, 대관과 간관을 아울러 이르던 말. 우리말샘

  • 주6

    : 나그네를 치거나 묵게 하는 집. 우리말샘

  • 주7

    : 조선 중기의 시인 최경창의 시집. 손자 최진해(崔振海)가 수집하고 증손 최석영(崔碩英)이 간행하였다. 우리말샘

  • 주8

    : 조선 중종과 선조 대에 걸쳐 시명(詩名)을 떨친 세 사람의 시인. 백광훈, 최경창, 이달을 이른다. 우리말샘

  • 주9

    : 전례(典例)와 고사(故事)를 아울러 이르는 말. 우리말샘

  • 주10

    : 벼슬 따위에 추천하여 관리로 뽑음. 우리말샘

  • 주11

    : 받들어 배향함.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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