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전기에, 예조참의, 홍문관부제학, 호조판서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1567년(선조 즉위년) 원접사(遠接使)의 종사관이 되어 명나라 사신을 맞았다. 그 해 동부승지에 발탁되었으며, 이어 대사간·병조참의를 거쳐 도승지·예조참의·홍문관부제학·이조참판을 역임했으며, 1573년 변무사(辨誣使)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이어 인성왕후(仁聖王后: 仁宗의 妃)가 죽어 복제 문제가 일어나자 3년상을 주장해 그대로 시행되었다.
1574년 형조판서가 되고 다음 해 평안도관찰사가 되어 선정을 베풀었다. 그 뒤 이조판서와 홍문관과 예문관의 제학을 지내고, 호조판서 재임 시 휴가를 얻어 함양에 성묘를 갔다가 그곳에서 죽었다. 청백리에 녹선되고, 앞서 종계변무(宗系辨誣: 명나라의 『태조실록』과 『대명회전』에 이성계가 고려의 권신 李仁任의 후손으로 잘못 기재된 일을 바로잡은 것)의 공으로 1590년 광국공신(光國功臣) 2등으로 연양군(延陽君)으로 추봉되었다.
문장이 뛰어나고 덕망이 높아 사림의 추앙을 받았다 한다. 함흥의 문회서원(文會書院)에 제향되었고, 시호는 문청(文淸)이다. 저서로는 『청련집』이 있다.
참고문헌
- 『명종실록(明宗實錄)』
- 『선조실록(宣祖實錄)』
- 『국조방목(國朝榜目)』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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