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신라 중고기의 전문기술관직.
개설
여기에서 장상의 의미는 ‘장작인을 거느리고 작업하는 우두머리’란 뜻으로 풀이할 수 있다.
내용
신라에서도 법흥왕 23년에 ‘장작’이란 이름을 사용하였다. 더욱이 장작인 7000명은 1개조 25명씩 280개조로 편성되었을 것이라고 추측하기도 하는데, 만일 그렇다면 6세기 전반에 신라에는 이미 일반 역부와 장인들을 징발할 수 있는 매우 정비된 체계가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체계가 어떤 관사를 중심으로 운영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장작’의 명칭이나 일련의 노동력 동원체계가 있었던 것으로 보아, 중국과의 교류로부터 어떤 영향을 받아 이러한 명칭을 사용하게 되었을 것 같다.
이 시기 중국 양나라에는 장작대장경(將作大匠卿)의 이름이 보편화되어 있었는데, 「영천청제비병진명」의 ‘장작(將作)’이나 ‘장상(將上)’의 명칭은 바로 이러한 관련에서 사용되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참고문헌
- 『대당육전(大唐六典)』
- 『신라수공업사(新羅手工業史)』(박남수, 신서원, 1996)
- 「영천청제비병진명(永川菁堤碑丙辰銘)에 대한 재검토(再檢討)」(오성, 『역사학보(歷史學報)』 79, 1978)
- 「영천청제비(永川菁堤碑)의 병진축제기(丙辰築堤記)」(이기백, 『고고미술(考古美術)』 106·107, 19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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