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전기에, 군자감부정, 예빈시정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1526년 유배지에서 풀려나와 문과 중시에 급제, 사가독서(賜暇讀書: 문흥을 일으키기 위하여 유능한 젊은 관료들에게 휴가를 주어 독서에만 전념케 하던 제도)하고 1529년 병조정랑, 그 이듬해 군자감부정 등을 역임하였다.
1532년 김안로(金安老)의 일당에게 몰려 유배되었다가 1537년 김안로가 문정왕후(文定王后)의 폐위를 도모하다가 유배되어 사사(賜死)된 후 해배되었다. 1547년(명종 2) 봉상시정을 거쳐 1550년 예빈시정으로 춘추관편수관을 겸하여 『중종실록』의 편찬에 참여하고 판교에 올랐다.
『성리대전(性理大全)』에 정통하여 시강관 시절에는 진강(進講)에 선발되었다. 기묘명현의 천거로 한 때 명망이 있었으나, 심정(沈貞)의 소요정(逍遙亭) 정자 서문을 지으며 미사여구를 남발하여 비난을 듣기도 하였다. 저서로는 『유정유고』가 있다.
참고문헌
- 『중종실록(中宗實錄)』
- 『명종실록(明宗實錄)』
- 『국조방목(國朝榜目)』
- 『해동잡록(海東雜錄)』
- 『기묘록보유(己卯錄補遺)』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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