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래의 군제가 각 영에 분산되어 있어 경비부담이 많고 편제에도 모순이 많아 이를 개편하였는데, 이 때에 설치된 3영의 하나이다. 장위영은 3영 가운데 좌영으로서 친군5영(親軍五營)의 좌영·전영을 통합, 계승한 것이다.
부대표시는 청색으로 하였으며, 최고위직인 장위사(壯衛使)는 한규설(韓圭卨)이었으며, 도제조(都提調) 1인, 영사(營使) 1인, 병방(兵房) 7인, 군사마(軍司馬) 2인, 문안(文案) 4인, 정령관(正領官) 1인, 부령관(副領官) 3인, 참령관(參領官) 6인, 초관(哨官) 16인, 참군(參軍) 2인, 군의(軍醫) 4인, 집사(執事) 49인, 초장(哨長) 30인, 별무사(別武士) 38인, 서리 13인, 서기 34인, 대령서리(待令書吏) 3인, 고직(庫直) 8인, 대청직(大廳直) 10인, 금송서원(禁松書員) 1인, 순령수(巡令手) 78인, 등롱군(燈籠軍) 38인, 병정 2,250인, 작대병(作隊兵) 1,960인 등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1894년 동학농민운동을 진압하는 데 동원되기도 하였으며, 같은 해 6월 동학농민운동을 계기로 우리 나라에 들어온 일본군대의 일부와 경복궁에서 충돌하자 일제에 의하여 강제 폐지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