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인동(仁同). 자는 여원(汝元).
중국말을 잘 하였다. 명사(明使) 및 차관(差官)이 올 때마다 차비관(差備官)으로서 통역을 잘 하여 비록 탐욕스러운 명나라 사람이라도 감히 함부로 토색질을 하지 못하도록 하였다.
1583년(선조 16)에 의주의 역학훈도(譯學訓導)로 부임하여 갔는데, 그 곳 목사가 일찍이 달밤에 통군정(統軍亭)에 올라 시를 짓는데 손에 잡은 술잔이 채 식기도 전에 끝을 맺자 즉시 부(賦)로 답하여 올릴 정도로 문필에도 능하였다. 벼슬은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이르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