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7년에 참령(參領)에 올랐고, 이듬해 6품으로 군부경리국장(軍部經理局長)이 되었다. 1901년에는 참교(參校) 김광식(金光植)이 취하여 보문각(寶文閣)에 난입했던 사건에 해당 부대의 친위(親衛)의 연대장서리(聯隊長署理)로서 군법에 의해 감(減) 3등과 태형(笞刑) 20대를 받았으나, 곧 풀려나 육군부령(陸軍副領)으로 승진하여 원수부군무국부장(元帥府軍務局副長)이 되었다.
이후 1902년 한성부판윤, 1904년 육군법원장 칙임관 2등, 통신원회판(通信院會辦) 칙임관 3등, 육군참장(陸軍參將), 관제리정소의정관(官制釐正所議定官), 1905년 총판사무서리(總辦事務署理), 통신원총판(通信員總辦) 칙임관 1등, 군부참모국장(軍部參謀局長), 군부군무국장(軍部軍務局長) 등을 역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