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인동(仁同). 역관 장현(張炫)의 종질이며, 희빈장씨(禧嬪張氏)의 오빠이다.
희빈이 숙종의 총애를 받게 되자 그 덕으로 금군별장이 되었으며, 이어 1692년(숙종 18)에 총융사가 되었다.
1694년에 인현왕후 민씨(仁顯王后閔氏)가 복위한 뒤로 이를 시기하는 희빈과 함께 인현왕후를 해하려는 음모를 꾸미다가 발각되어 사형을 받게 되었으나, 후환이 세자에게 미칠 것을 염려한 남구만(南九萬) 등 소론의 주장으로 사형은 면하고 제주도에 유배되었다.
1701년 희빈 장씨가 인현왕후를 주술로 저주한 사실이 발각되었고, 장희재를 극형에 처해야한다는 상소 역시 재개되었다. 왕은 처음에는 거절하였으나 마침내 제주도 유배지에서 잡아올려 사형에 처하고, 희빈은 자결하게 하였다. 이 사건으로 민암(閔黯)·유명견(柳命堅) 등이 관련되어 유배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