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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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교
의례·행사
양재기복(禳災祈福)하는 일에 당사자를 대신하여 도사가 제신에게 빌어 주는 도교의례. 제례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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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양재기복(禳災祈福)하는 일에 당사자를 대신하여 도사가 제신에게 빌어 주는 도교의례. 제례의식.
내용

재초는 도사가 목욕재계한 다음, 제단을 설치하고 정해진 순서에 따라 부(符)를 가지고 신귀(神鬼)를 핵소(劾召)하며 기원을 드리는 의식이다. 그때 드리는 기원문을 장(章)이라 하고, 그 글 자체는 재사(齋詞) 또는 청사(靑詞)라고 한다.

기원하는 내용의 길흉에 따라 흉사를 위한 것은 재(齋)로, 길사를 위한 것은 초(醮)로 구별되기도 하나, 그 어간에는 엄격한 구분을 짓기가 어려운 경우가 없지 않다. 재와 초는 의식절차에 차이가 있는데, 재의 기원문은 재사, 초의 기원문은 청사라고 한다.

이러한 재초를 통하여 크게는 천재지변이나 전란 등의 재앙을 막아 국가에 안녕을 가져 오고, 우순풍조(雨順風調)하고 화기가 충만하여 백성들이 기뻐하고 나라가 풍요롭게 해달라고 기원하며, 작게는 질병의 치료, 수복(壽福)의 향유, 망령(亡靈)의 구제 등을 빈다.

재초의 종류는 금록대재(金籙大齋)·황록재(黃籙齋)·명진재(明眞齋)·삼원재(三元齋)·팔절재(八節齋)·도탄재(塗炭齋)·자연재(自然齋)·개복신초(開福神醮)·청명초(淸命醮)·도병초(禱病醮)·기우초(祈雨醮)·본명초(本命醮)·진병초(鎭兵醮)·삼계초(三界醮) 등 매우 많다. 이러한 재초에서 대상이 되는 신과 귀(鬼)의 수는 대단히 많아 열성(列聖) 360, 성위(星位) 1,200 등 제단에 올리는 신주의 목주명(木主名)에 관한 기술이 전해본다.

재초는 주로 도관(道觀)에서 거행되나, 성위에 따른 각 지방의 명산에 제단을 설치하고 거행하기도 하였다. 재초의 의식 진행절차는 극히 번잡하다.

태상소재기복초(太上消災祈福醮)는 도교의 최고천인 대라천(大羅天)에서 만유를 통치한다는 삼천존(三天尊) 가운데 현재를 다스리는 태상옥황천존(太上玉皇天尊)에게 양재기복을 구하는 제례이다.

그 의식절차는 ① 관첩금단축(關牒禁壇祝)의 주고(奏告:아룀), ② 계당송(啓堂頌), ③ 예사존념(禮師存念), ④ 오방위령신주(五方衛靈神呪)의 선독(宣讀), ⑤ 도강창(都講唱), 법고(法鼓) 24통(通) 타명(打鳴), ⑥ 발로(發爐), ⑦ 단공(壇供), ⑧ 각칭명위(各稱名位), ⑨ 청성위(請聖位)·상향(上香)·상다(上茶)·헌주(獻酒).

⑩ 초헌법사(初獻法事)의 주고, ⑪ 중칭법명(重稱法名), ⑫ 청사선독, ⑬ 재상향헌주(再上香獻酒), ⑭ 아헌법사(亞獻法事)의 주고, ⑮ 전마삼상향헌주(錢馬三上香獻酒)의 주고, ⑯ 종헌법사(終獻法事)의 주고, ⑰ 송신송(送神頌), ⑱ 견관환위(遣官還位), ⑲ 복로(復爐) 등의 순으로 이루어진다.

태상황록재는 아침의 청단행도(淸旦行道), 낮의 중분행도(中分行道), 저녁의 낙경행도(落景行道)로 하루 세 차례의 의식을 거행하는데, 3일 또는 그 이상을 계속한다.

(1) 고구려시대

고구려에서는 643년(보장왕 2)에 연개소문(淵蓋蘇文)의 건의에 따라 당나라에서 도교를 도입하였다. 이때 당태종은 숙달(叔達) 등 도사 8명을 고구려에 보냈고, 보장왕은 불사(佛寺)를 도관으로 하고, 도사를 유사(儒士)의 상위에 앉게 하였으며, 도사들은 국내의 이름있는 산천을 진호(鎭護:난리를 진압하여 나라를 지킴)하는 재초를 거행하였다.

그 뒤 고구려는 얼마 안 가서 멸망하였고, 신라에서는 재초의 거행을 중심으로 하는 과의도교(科儀道敎)는 받아 들이지 않았던 듯 재초와 관련되는 기록은 아직까지 발견되지 않았다.

(2) 고려시대

고려시대에 들어서서부터는 과의도교가 국가 차원에서 받아 들여져 각종 재초가 빈번하게 거행되었다. 《고려사》의 기록으로는 1018년(현종 9) 7월 을해일(乙亥日)에 구정(毬庭:궁중이나 큰 집의 집안에 있던 격구하는 크고 넓은 마당)에서 대초(大醮)를 거행한 것이 고려 최초의 재초이다.

그 뒤 현종은 1023년에 다시 구정에서 한 차례 대초를 거행하였고, 덕종과 정종 때에는 몇 차례의 기우초(祈雨醮:비가 오기를 비는 제례의식)가 있었다.

문종은 즉위년인 1046년 6월 기미일(己未日)에 대궐 안에서 본명초를 거행하였고, 재위 37년 동안 매년 같은 때에 본명초를 연례행사로 거행하였다. 그리고 기우초와 태일구궁초를 지내기도 하였다.

이렇듯 고려의 역대 국왕은 각종 재초를 지냈는데, 그 중에서 숙종과 의종이 가장 빈번하게 재초를 거행하였다. 〈세가 世家〉에 나타나는 것으로는 예종이 27회의 재초를 거행하였다.

기우초 이외에도 태일(太一)·삼계신기(三界神祈)·호천오방제(昊天五方帝)·삼청(三淸)·남두(南斗) 등을 대상으로 재초가 거행된 것이 보인다.

예종은 특히 도교를 좋아하여 복원궁(福源宮)을 짓고 그곳에 고진도사(高眞道士)들을 두어 재초를 맡아 집행하게 하였고, 때로는 예종이 직접 재초하기도 하였다. 예종은 1107년 윤10월 경자일(庚子日)에 옥촉정(玉燭亭)에 원시천존상(元始天尊像)을 안치하고 월 초, 즉 월례적인 초제를 지내게 하기도 하였다.

의종은 기록상으로는 26회에 그치나, 그 밖에도 재초의 거행이 아주 빈번하였던 것으로 전해온다. 자신의 수명 연장을 희구하여 노인성초(老人星醮)를 지내는 데 열중하였고, 남두·삼계신·천조(天曹)·이십칠위신(二十七位神)·태일·삼청·북두·천황대제·십육신·십일요(十一曜)·남북두(南北斗)·이십팔수(二十八宿)·십이궁(十二宮) 등 재위중에 거행한 재초의 종류는 다양하다.

(3) 조선시대

조선시대에는 주로 소격서(昭格署)에서 재초가 거행되었다. 권근(權近)·변계량(卞季良) 등이 청사를 많이 남긴 것을 보면 조선 초기에도 재초가 계속 거행되었음을 알수 있다.

소격서에는 태일전·삼청전·직숙전(直宿殿)·십일요전(十一曜殿) 및 내외제단(內外諸壇)이 있어 옥황상제를 비롯한 수백에 달하는 도교신의 신위를 마련해 놓고, 헌관·서원(署員) 및 도류(道流)가 각각 분담하여 재초를 집행하고 있었다.

성현(成俔)은 소격서에서 재초를 지내는 상황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헌관과 서원은 흰 옷에 검은 두건 차림으로 재계를 하고서 관(冠)·홀(笏) 및 예복 차림으로 재초를 집행한다. 도류는 머리에 소요관(逍遙冠)을 쓰고, 몸에는 무늬가 번쩍이는 옷을 입고, 경(罄)을 24번 울린 뒤에 두 사람이 도경(道經)을 읽고, 또 청색 종이에 축사(祝詞)를 써서 그것을 태운다.”

이러한 조선 초기의 재초 의례절차는 중국 도관에서 행해졌던 본래의 절차에 조절이 많이 가해진 것이었으리라고 생각된다. 중종 때 신진 사류들의 강력한 반대로 소격서가 혁파됨에 따라 그곳에서 거행되던 재초도 중단되기에 이르렀다.

그런데 강화도의 마니산(摩尼山) 참성초(塹星醮)는 본래 민족 고유의 일신숭봉사상(一神崇奉思想)을 반영한 제천행사였는데, 도교 도입에 따라 고려 때부터는 성수경배(星宿敬拜)의 뜻을 곁들여 참성초로 바뀌어 국가의 연례행사로 되었다.

이 마니산의 참성초는 조선 선조 때까지도 제관과 향축(香祝:향과 축문)을 보내어 거행되었는데, 그 재초의 혁파를 둘러싼 시비가 있었고, 그 일과 관련하여 이이(李珥)는 1569년(선조 2)에 마니산 참성초의 청사 제작을 사퇴한 일까지 있었다. 그 뒤 1641년(인조 19)에는 마니산에 제단을 수축하고 매년 봄·가을로 향축을 내려 참성초를 지내게 하기도 하였다.

참고문헌

『도장(道藏)(삼동부계률류(三洞部戒律類) 및 위의류(威儀類), 정통도장본(正統道藏本)』
『삼국사기(三國史記)』
『삼국유사(三國遺事)』
『고려사(高麗史)』
『태조실록(太祖實錄)』
『태종실록(太宗實錄)』
『중종실록(中宗實錄)』
『선조실록(宣祖實錄)』
『경국대전(經國大典)』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동문선(東文選)』
『조선도교사(朝鮮道敎史)』
『한국의 도교사상』(차주환, 동화출판공사, 1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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