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옥산(玉山). 자는 여중(汝重), 호는 파수(巴叟). 부친은 사재감정(司宰監正) 전련(全璉)이다. 1594년(선조 27) 무과 별시 병과에 급제하였다.
1602년(선조 35)에 경상도 동래소모진(東萊召募陣) 천총(千摠)으로 근무 중 경상도체찰사 이덕형(李德馨)의 추천에 의하여 승려 유정(惟政)을 따라 일본에 사신으로 다녀왔다. 이 공으로 첨지중추부사가 되었고, 1604년에는 경상도우후(慶尙道虞候)가 되었다.
1609년 일본의 도쿠가와 이에야쓰[德川家康]가 조선과 화친을 꾀하여 통신사의 파견을 요구해오자 1606년(선조 39) 일본의 사정을 알아보기 위한 사절로서 조훤(趙暄)·손문욱(孫文彧) 등과 함께 대마도에 건너가 일본 측의 의사를 타진하고 돌아왔다. 이후 1607년(선조 40) 첨지중추부사와 함안군수를 역임하였다.
1614년에 사망하였다. 전계신을 추모하기 위해 화강서당(花岡書堂)이 건립되었다. 시문집으로 『파수실기(巴叟實紀)』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