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학생총연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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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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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7년에 조직되었던 우익학생 운동단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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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1947년에 조직되었던 우익학생 운동단체.
연원 및 변천

모스크바 3상회담에서 한반도에 대한 신탁통치를 결정하였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좌익·우익을 막론하고 전체가 격렬한 반대를 하였다. 그러다가 좌익진영이 돌연히 찬탁으로 태도를 변경하자 좌·우익 진영 사이에는 전부터 있어온 대립이 이 문제로 인하여 더욱 첨예화되었다.

이에 따라 학생운동도 역시 좌익계통의 조선학도대(朝鮮學徒隊)와 우익계통의 전국반탁학생총연맹(全國反託學生總聯盟)이 극단적인 대립을 벌이게 되었다. 좌익학생운동은 공산당의 지령하에 일사불란하게 움직였지만, 민족진영의 학생운동은 반탁학생총연맹으로 집결은 되었으나 주도권문제로 분열이 심하였다.

이에 반탁학련·독립학생전선 등의 대표와 각 학교의 교내에서 활동하던 학생대표들이 적전 분열현상에 대한 반성과 효과적인 학생운동을 위하여 서울 남산동에서 여러 차례의 회합을 한 결과 민족진영 학생들의 대동단결을 위하여 기존의 모든 단체를 해체하고 새로운 총집결체를 결성할 것을 결의하였다. 이 결의에 따라 1947년 7월 31일 서울 인사동에 있는 중앙예배당에서 전국학생총연맹의 결성을 보게 되었다.

위원장에 이철승(李哲承), 간부에 이인세(李仁世)·이동원(李東元)·박용만(朴容萬)·채문식(蔡汶植)·장익삼(張翼三)·박갑득(朴甲得)·윤원구(尹元求)·김진웅(金振雄)·박석규(朴錫圭)·윤한병(尹漢炳)·이덕원(李德元)·오홍석(吳洪錫)·양근춘(梁根春)·이승철(李承哲)·이세광(李世光)·정인수(鄭仁洙)·임상억(林相億)·김상종(金相鍾) 등으로 구성되었다.

막강한 규모와 조직력으로 반탁운동을 비롯한 대공투쟁에 많은 업적과 불멸의 공훈을 남겼지만, 전국학련 내의 주도권싸움도 그칠 날이 없었다. 이철승이 1948년 9월 10일에 총선거에 출마하여 학생신분을 상실하자, 부위원장으로 있던 손도심(孫道心)이 이철승과 대립하여 또 하나의 위원장이 됨으로써 전국학생총연맹은 두 조각으로 나누어지게 되었다.

이렇듯 전국학생총연맹은 주도권다툼이라는 내부적 진통을 겪으면서도 국제공산주의의 노선에 대항하여 조국의 완전자주독립을 위하여 투쟁하다가 1949년 4월 22일 대한학도호국단의 설치와 더불어 막을 내렸다.

참고문헌

『한국청년운동사』(선우기성, 금문사, 19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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